3·15의거로 기억되는 민주성지 마산
민주주의전당 조성 앞서 정신 기억해야

저는 진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 쭉 자랐고, 고등학교는 마산상고(현 용마고)를 졸업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전국 회의나 모임에 갈 때가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저의 이름과 함께 소속 교구명으로도 많이 부릅니다. 저는 "마산 신부님"이라고 불립니다. 제가 지금 살고 일하는 곳이 창원이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저를 만나면 "마산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마산과 창원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창원이 더 오래고, 현재를 보아도 창원이 대셉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창원보다 마산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창원시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선사시대-삼국시대(가야시대)-통일신라(남북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일제강점기-해방 이후(1960년 3월 15일 : 3·15마산의거가 일어나다)-2010년 7월 1일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의 통합으로 창원시가 출범되다'에서 실마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옛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되어 지금의 '창원시'가 '창원'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가슴속에는 3·15의거의 도시 '마산' 대한민국 근대 최초의 민주항쟁 도시 '마산'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15의거 중심에는 '3·15의 화신, 4·19의 횃불' 김주열 열사가 있습니다. 김주열 열사가 없었다면 어찌 3·15 가 4·19로 이어졌겠습니까?! 이렇다 보니 제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마산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왜 새삼스레 지나간 일을 들썩거리나 싶으실 겁니다. 역사는 기억되어진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기억되지 못하면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나 장소도 한낱 안줏거리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사건 장소가 도 문화재로 지정된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를 중심으로 민주 공원이 조성되고 민주주의 전당이 세워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되면 참 좋겠다 싶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민주 공원이 조성되고, 민주주의 전당이 세워지는 곳이 왜 그곳인가 하는 점을 사람들이 명확히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곳이 3·15의거에 이은 2차 봉기이며 4·19의거의 도화선이 되는 4·11봉기의 시발점이고, 도 문화재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이기 때문입니다(독립기념관이 천안시에 자리 잡은 것은 유관순 열사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3·15의거 발상지인 창동의 옛 민주당사 건물이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산이 '의거의 도시 마산'이 될 수 있었던, 3·15의거의 첫 불길이 타오른 '민주당사'는 보존해야 할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창원시가 매입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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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기억과 전승에서 시작되고 발전됩니다. 우리 삶을 이루는 수많은 것 중에, 지역 자부심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디를 가든 "나는 마산 신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큰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역사가 제대로 기억되고 보존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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