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낱같은 재능믿고 도전한 글쓰기
누구에게 위로가 되는 글 쓰고파

원고 마감이 이틀 뒤인데 큰일이다. 한 글자도 못 썼다. 바로 이 글 말이다. 몇 가지 주제를 두고 고민하기를 며칠, 마감이 영감이라는 말을 믿고 책상에 앉았다. 최근의 경험들과 고민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녀도 정작 한 줄로 표현되는 메시지가 잡히지 않았다. 한마디로, 망했다.

왜 나는 천재가 아니란 말인가. 절망은 절망이고 살림은 살림이기에 설거지를 하며 푸념을 했다. 최근에 읽은 글들을 떠올리니 자괴감만 깊어진다. 사유와 통찰이 담긴 에세이, 지식을 세련되게 전달하는 인문서, 인생을 노래하는 시….

게다가 주변에 독서광이 여럿 있어 책을 추천받는 일도, 선물받는 일도 잦다. 공감 가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것도 모자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저장하고, 필사도 한다. 내 것이 아닌 명문장의 단어 하나라도 마음에 새겨지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꾹꾹 눌러 쓴다.

대학 시절, 교수님이 한 말이 떠오른다.

"작가가 될지 말지는 지금 고민하지 말고 일단 써라. 뭐든 10년은 해봐야 안다."

스무 살 신입생에게 서른 살은 얼마나 까마득한 세월처럼 보였는지 모른다. 만약 10년을 버틴 후, 재능이 없다고 판명되면 어떡하나 섣부른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은 역설적으로 먹고사니즘에 허덕일 때마다 나를 토닥이는 주문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10년은 해봐야지. 아직 10년도 안 됐는데.

졸업 후에 뭘 해서 돈을 버나 막막했다. 잘하는 것은 청소와 인사라는 말에 누구는 직업으로 고시원 총무를 추천하기도 했지만 실낱같은 재능은 글쓰기라 믿고 문필업 하청업자가 되었다. 다자이 오사무, 김승옥, 크리스토퍼 바타유처럼 젊은 날에 세상이 알아보는 인재는 되지 못했으나, 드문하게 주목을 받고 금세 흐려지곤 했다.

멘토들은 어찌나 높고 빛나는지. 나의 재능은 그 발끝 밑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나날이 확인해가는 일이었다.

갈수록 어휘력은 줄고, 호기심도 줄었다. 여기에 출산, 육아와 함께 경력 단절까지 앙상블을 이루니 이만하면 탕탕- 재능 없음을 선고받은 기분이다. 좋은 책을 읽고 마음이 개운해지다가도, 공책에 나의 글을 쓰면 그 갭에 주저앉았다. 세상에 천재가 있다면 1%일 것인데 어째서 그 1%가 99% 범재의 기를 꺾는 것인가.

다행이다. 이제 원고 반을 넘겨썼다. 새롭게 발견한 나의 재능은 이런 것이다. 평범한 노력. 다소 뻔뻔한 마음. 언젠가 그림 그리는 친구에게 새롭게 쓴 희곡을 보내 준 적이 있다. 마치 비밀을 쪼개 나눠준 듯 설렜다.

며칠 후, 기다리던 답신이 도착했다. 솔직한 감상평을 기대하며 메일을 열었다. 거기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수미야, 네 글 보고 나도 희곡이란 걸 써봤다."

그리고 희곡 한 편이 첨부되어 있었다. 나의 엉성한 글이 친구에게 '나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원했던 피드백은 아니었지만 내 글 덕분에 친구는 인생 첫 희곡을 완성했다.

김수미.jpg

어릴 적 나는 세상을 위로하는 글을 쓰겠다고 외쳤다. 나이가 들면서 그게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 다른 방법으로도 내 글이 타인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 천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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