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탈색이 일상화된 대안학교 풍경
적극적인 자기표현으로 받아들여야

그 무섭던 폭염도 때가 되니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가을 풀벌레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도 다 때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2학기 개학을 하니 아이들 머리색깔이 형형색색이다. 특히, 일반학교에서 전학 온 여학생 세 명은 보란 듯이 당당하게 노란색, 분홍색, 빨간색으로 물들이고 나타났다. 이제 대안학교에 왔으니 당연히 이렇게 해도 된다는 듯이.

지난 1학기 내내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다녔던 3학년 희서는 개학하면서 원래 모습 그대로 탈바꿈하고 돌아왔다. 노란 머리 희서를 찾다가 검은 머리 희서를 발견하고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 노란 머리가 '질려서' 염색은 안 하기로 했단다. 남학생 몇 명도 노랗게 탈색하고 다닌다. 전교생 88명 중 8명 정도가 머리 염색을 했다. 전체 학생의 10% 정도다.

교사회의 시간에 "아이들의 염색을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 동네 어른들이 아주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한마을에 살면서 그냥 듣고 있기에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나는 일반학교에 18년을 근무하다가 산청 간디학교에서 대안학교 교사로 거듭났다. 대안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복장 단속, 두발 단속을 더 이상 하지 않아서 좋았다. 간디학교 아이들은 계절에 따라 머리색깔이 자주 바뀐다. 노란색으로 물들이던 아이들이 파란색으로 물들이다가 검은색으로 졸업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가 다 염색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거기서도 대략 10% 정도다.

대안학교 교사가 되어 비로소 아이들을 만날 때 머리색이나 옷매무새로 예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듣고자 했다. 이제 나는 아이들의 염색을 문제로 보지 않고 적극적인 자기표현으로 받아들인다. 국내외로 명성 높은 헤어디자이너 이성범 선생님은 무려 3000여 가지 헤어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몇 가지 헤어스타일을 용납하고 있을까?

태봉고에서 재직할 때 선배 이순일 선생님은 늘 생활한복 차림으로 긴 백발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다니셨다. 대안학교에 와서 비로소 신체표현의 자유를 누린다고 호탕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올해 우리 학교에 초임 발령받은 국어 선생님은 어느 날 노란색 머리로 출근했다. 나는 껄껄 웃으며 환영했다. 그런데 며칠 뒤 분홍색으로 바뀌더니 이내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선배 선생님들이나 동네 어르신들과 학부모님들의 눈살이 무서워 되돌렸다고 했다. 30년 전 초임 교사 시절에 넥타이 매지 않고 출근했다가 교감선생님께 훈계받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교육부는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지지, 관심, 사랑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잘 안다. 우리 아이들은 노란, 빨간 머리를 하고도 마을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잘 한다. 오늘도 "야, 그놈들, 참 밝고 명랑해서 좋구나!" 하고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어른들이 계셔서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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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교사독서회가 9월에 읽고 토론할 책은 <빨간 머리 앤>이다. 우리는 오늘도 배움과 성찰에 목마른 교사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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