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험 EBS 교재서 출제
교사따라 수업방식 달라 민원도
고3 학생, 문제 풀이·암기 급급
변별력 저하·형평성 지적 잇따라

교육방송(EBS) 교재·강의와 연계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의 70%를 출제하는 교육 정책이 고등학교 교육과정 황폐화를 가져오고 있다.

고교 3학년 교실에서는 수능 연계 교재를 교과서로 대체하는 현상이 심각해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힘들 정도다. 학교에서 치르는 중간·기말고사에 EBS 문제풀이집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교사에 따라 문제 풀이 유형이 달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EBS만 보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2011년부터 EBS 연계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변별력 저하' 우려가 제기됐다. 교육부는 이를 보완하고자 수학 교재의 경우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가 많고 일부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도 출제되고 있다. 고3 교실은 교과서 외에 수십 권에 달하는 EBS 교재를 달달 외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는 11월 15일 시행되는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원서 접수가 시작된 지난 8월 23일 응시생들이 원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방대한 시험 범위로 반마다 성적이 다르다며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경남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한 한 학생은 "1학기 2차 고사 수학 시험 범위는 EBS 문제풀이집 2권이었고, 반반씩 출제됐다. 문과 앞반 수학 선생님은 쉬운 문제 풀이 중심으로 수업을 하고, 뒷반 선생님은 어려운 문제도 함께 풀이했다. 2차 고사를 3일 앞둔 자습시간, 앞반 수학선생님께 어려운 문제 풀이를 물었는데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문제가 배점 높은 시험 문제로 출제됐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이어 "뒷반 선생님은 이 문제를 수업시간 풀이를 해줬다. 학생이 물었는데도 가르쳐주지 않은 선생님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도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개최해 이 사안을 논의한 결과, 재시험은 치르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는 이의제기 신청이 끝난 후 문제를 제기해 재시험을 치르면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 질문에 교사가 적극적으로 지도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해당 교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계획이다.

이 학교 한 교사는 "문제집 2권을 수업시간에 모두 풀어줄 수 없다. 수업시간 풀이한 문제가 시험에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다. 시험에 나올 문제를 학생이 물었을 때 교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EBS-수능 연계정책으로 개념 중심 수업이 아닌 수백 개 수능 예상 문제 풀이밖에 할 수 없는 고교 수업 현장에 교사들도 한숨을 내쉬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꾸준히 EBS-수능 연계정책 문제를 지적했다. 이해력과 사고력, 응용력이 필요한 미래사회에 암기하고 정답을 맞히는 능력은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크다. 교육부는 최근 발표한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고교교육 혁신방향'에서 수능-EBS 연계율을 현행 70%에서 50%로 낮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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