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아버지가 "빌어먹을 바흐"로
구마사제, 악마 퇴치용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바흐의 음악 사용

사제복을 입은 두 외국인이 다급하게 움직인다. 두려움에 휩싸인 그들은 결국 어린 학생을 차로 치고 도망치다 그들 또한 우연한 사고를 당한다. 어두운 기운이 주위를 감싸고 간신히 몸을 일으킨 영신(박소담)은 악마에 빙의된다. 박신부(김윤석)는 오랫동안 영신을 알고 지내던 구마사제다. 그는 악마로부터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그 세력이 너무나 강하다. 그를 돕던 동료는 두려움으로 결국 박신부를 떠나고 종교지도자들 또한 그에게 협조적이지는 않으며 심지어 거짓말쟁이, 성추행자로 그를 의심한다. 조력자가 떠난 자리를 대신하기 위하여 선택된 최부제(강동원), 그는 신학교의 말썽 많은 학생이다. 쾌활하고 밝은 성격인 듯하지만 실상은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그는 어릴 적 개에게 공격당하는 여동생을 두고 도망친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지니고 있다. 교장은 최부제에게 박신부를 감시하고 그의 부정을 밝힐 증거를 가져올 것을 지시하며 그를 박신부에게로 보낸다. "뭐 별거 있겠습니까? 근데 궁금하긴 하네요." 이렇듯 상황을 가볍게 인식하던 최부제는 점차 그 심각성을 알아가게 되고 인류의 운명을 건 구마의식을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악마로부터 영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집요하게 약점을 파고 드는 악마로부터 최부제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신은 과연 목숨을 건 구마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구마사제의 무기

영화의 후반부, 우리는 악마와 두 구마사제의 피 말리는 접전을 감상할 수 있다. 오직 설전으로만 그것도 알아 듣지 못할 라틴어로 오가는 상황의 긴장감이 놀랍다. 십자가를 가슴에 꽂지도 않고 악마가 입에서 불을 내뿜지도 않는다. 오직 '왜 왔느냐?' '떠나라'는 기도와 '너희를 증오한다''너희를 파멸시키겠다'는 악마의 증오에 찬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이 어려운 싸움에서 구마사제들의 무기는 무엇인가? 성경, 성수, 기도문, 영대, 소금, 프란치스코의 종 그리고 바로 음악의 아버지 '바흐'다.

구마의식의 시작과 함께 어둡고 좁은 방안을 빛처럼 가득 채우던 성스러운 울림, 칸타타 BWV140 '눈 뜨라 부르는 소리 있어(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이다. 이때 악마는 '빌어먹을 바흐'라고 말하곤 그를 저주한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에서도 악마를 퇴치하는 데 바흐의 음악이 효과를 발휘하니 무서운 길을 걸을 때를 대비해 바흐 작품 하나 정도는 외워 부를 수 있어야 하나 싶다. 그렇다면 악마는 왜 이토록 바흐를 싫어할까? 독실한 신자였던 바흐는 평생에 걸쳐 교회를 위한 음악적 봉사에 성실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음표 하나 하나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어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것으로 알려진다. 칸타타는 크게 세속 칸타타와 교회 칸타타로 나누어질 수 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세속 칸타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말 그대로 '커피가 좋아'라는 내용인데 아마도 동명의 커피제품은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바흐를 대표할 수 있는 칸타타는 200개가 넘는 교회칸타타라 하겠다. 교회의 매 절기에 맞추어 그는 성실히 작곡에 임했으며 깊은 신앙심이 곡마다 담겨 있다. 칸타타 하나 하나가 그에게 기도였음에 악마가 싫어할 수밖에. 영화 <검은 사제들>에 사용된 작품은 BWV 140 '눈 뜨라 부르는 소리 있어'이다. 그토록 많은 바흐의 칸타타 중 가장 밝은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4번째 곡 '파수꾼의 노래를 시온성은 듣네(4. Zion hort die Wachter singen)'의 선율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학창시절 재미 있게 읽었던 소설 <퇴마록>에도 '눈 뜨라 부르는 소리 있어'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으며 박신부도 등장한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모티브가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레고리안 성가

구마의식을 행하던 중 위기에 빠진 최부제에게 악마가 속삭인다. '도망가,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어린 시절 위험에 빠진 동생을 버려 두고 달아난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는 이번에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만다. 어두운 골목에서 밝은 거리로 뛰쳐나온 그는 신발이 없다. 어릴 적 동생을 버릴 때는 한 짝만이었지만 지금은 두 짝 모두 없다.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던 그는 어두운 골목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릴 적 자신과 동생의 모습을 본다. 둘은 손을 꼭 붙잡고 있다. 이때 서서히 번지는 동생의 미소, 용서한단 말인가? 이해한단 것인가? 결심한 듯 돌아온 최부제에게 박신부는 묻는다.

'왜 왔냐?' '신발을 두고 가서요'. 이 둘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성경구절을 함께 외우며 또 한번의 결전을 준비한다. 유황과 몰약을 태우는 향로를 들고 영신을 향하는 최부제, 많은 여성들이 이 장면에서 배우 강동원에게 빠져 들었다고들 하는데 남자인 내가 봐도 멋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의 짜릿함은 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의 외모가 아니라 주인공 최부제가 부르는 노래에서 온다. 먼 옛날 수도사들이 부르던 '그레고리안 성가'. 박신부도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최부제의 소리가 아름답다면 박신부의 노래는 거룩하다. 'Victimae paschali Laudes (파스카의 희생을 찬미하라)',

그레고리안 성가는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불리던 미사 성가로서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무반주 합창곡이다. 7세기 초 '대 그레고리오 교황'께서 산재되어 있던 곡들을 정리토록 하였기에 그레고리안 성가로 현재는 불린다. 화음이 들어가는 예배음악이 나오기까지 오랜 기간 미사를 위한 음악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화음이 없는 단선율인 것이 특징이다.

글을 읽듯, 말을 하듯 이어지는 나지막한 수도사들의 음성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음악으로 인한 정신적 정화를 원하는 이들에게 유용하다. 실제 이탈리아에서는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에 그레고리안 성가를 방송하게 함으로써 사고 발생률을 현저히 낮춘 사례도 있다 하니 음악으로의 기도이며 참선인 셈이다.

◇악마를 이기는 '생명'

두 주인공이 부른 'Victimae paschali Laudes(파스카의 희생을 찬미하라)'는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에도 사용되어 관객들을 자리에 붙잡아 두었었다.

앞서 언급한 소설 <퇴마록>에는 이러한 장면이 있다. 가장 강력한 악마를 소환하려는 찰나 여인의 뱃속에 있던 그것은 서서히 소멸되어 간다. 퇴마사들의 강력한 주술이나 박신부의 기도 때문이 아니다. 여인의 뱃속에 잉태해 있던 새 생명, 그 조그마한 생명은 자신의 자리를 주장하며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여기던 악마를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박신부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힘든 싸움이 끝난 후 숨이 끊긴 영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네가 다 했다'. 악마와 두 구마사제의 결전인 듯하나 실제 악마와 가장 치열하게 싸운 것은 바로 어리고 약한 하지만 착한 마음으로 무장한 영신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몸에 악마가 들어온 사실을 아는 그녀는 안타까워하는 박신부를 향해 웃으며 이야기했었다.

'신부님, 저 괜찮아요. 제가 꼭 붙잡고 있을게요.' /시민기자 심광도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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