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덜컹 지하철처럼 내 만화인생도 흘러가네요

진주 출신의 만화가 하재욱(43) 씨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재치 있게, 감각적으로 잘 담아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놀라운 건 일반 직장에 다니며, 출·퇴근 시간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대부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인데 그 덕분인지, 환경적응의 산물인지 지금의 그림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고 하 작가는 웃으며 말했다.

만화쟁이를 적대하던 집안 환경을 딛고

Q. 진주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출생지 등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1975년 진주 상평동 쪽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그 근처 진주기계공고 선생님이었거든요. 어머니도 선생님이었는데 두 분 다 제가 대학 다닐 때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3형제 중 둘째구요. 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해 은평구 역촌동 이모님 댁에서 하숙을 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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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재욱 만화가. / 고동우 기자

Q.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를 나왔죠? 미대에 들어간 거 보면 일찍부터 그림·만화에 관심이 있었던 거 같은데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계기였나요? 왜 다른 그림이 아닌 만화였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림은 기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늘 그리고 낙서를 했고, 모든 교과서와 공책 빈 공간에 그림을 끄적였습니다. 부모님이 워낙 공부를 강조하셔서 노는 방편으로 몰래몰래 만화책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화보집을 즐겨보다 보니 재능과 관심도 그쪽으로 생긴 거 같습니다. 자연스럽게요. 당시는 만화, 만화쟁이를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했거든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진주라는 지역의 특색도 있었습니다. 전 죄책감까지 느꼈고 어려운 여건에서 그나마 접하기 쉬운 게 만화책이었습니다. 순수 미술 쪽으로 가지 않은 한 이유일 수 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어머니도 어릴 적 미대에 가고 싶어 했다더군요."

Q. 그런 환경이라면 미대에 들어가기도 힘들었겠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점점 용기를 낸 거 같습니다. 원래 예고를 가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이 어렵다고 해 그건 포기했죠. 그러다 교회를 다니고 거기서 중창단 활동을 했는데 이게 신세계였습니다. 이성이란 걸 알게 되고 노래 부르고 악보 외우고, 새로운 세상에 꽂혀서 학교 성적도 떨어지고 그랬습니다. 그때 결단을 했죠. 정말 잘할 수 있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자. 역시 그림이었습니다. 근데 공부로만은 안 돼서 미술학원을 다녀야 했는데 그때 부모님과 갈등이 심했죠. 아버지가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막 우겨서 결국 학원에 갔는데 거의 수능 임박해서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공부는 좀 해서 실기보다는 필기에서 점수를 따서 대학에 붙을 수 있었죠."

Q. 그때 이미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겁니까?

"만화에 인생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군대에서였습니다. 여수 해안에서 12시간씩 경계 근무를 서면서 온종일 그림을 그렸습니다. 디자인은 아니었어요. 그 후 복학해서 만화가에 필요한 체력을 위한 체육 관련 수업, 스토리텔링에 도움 되는 국어 관련 수업 등을 들었습니다. 그때 만화 공모전을 준비하다 부모님 두 분을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Q.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집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궁금한 게 많이 팔렸나요?

"2014년부터 지금까지 <안녕 하루>, <고마워 하루>, <어제 떠난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오늘하루> 세 권을 냈습니다. 첫 번째 책인 <안녕 하루>는 초판이 다 팔렸지만 1인 출판사에서 출간한 관계로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2쇄를 못 찍은 상황이구요, 두 번째 책은 1000부 정도 찍었는데 아주 조금씩 팔리는 듯합니다. 세 번째 책은 중견 출판사에서 출간을 했는데 전혀 안 팔리는 듯해요. 그리고 조만간 조금 얇은 책의 형태로 2권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출판사에서 7권을 시리즈로 기획했는데 먼저 두 권을 출간할 계획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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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간 발행될 하재욱 작가 신간에 실릴 표지 그림. 그림 제목은 ‘화요일 출근은 늘 힘들다-술먹은 다음날’. / 하재욱 만화가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그림 그리기

Q. 놀라운 건 일반 직장을 다니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바일 게임회사로 알고 있는데 힘들지 않나요? 전업 작가는 생각이 없습니까?

"13년째 다니고 있는 컴투스라는 회사입니다. 그곳에서 게임에 들어가는 배경컨셉 디자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주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 안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매일매일 쓰고 그려서 페이스북에 연재했던 것이 책으로 출간된 것이죠. 책 작업을 위해 따로 시간과 공간을 낼 여유가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쓰다 보니 지금의 스타일을 갖게 됐습니다. 전업 작가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이 세계적으로 많이 팔려 스타작가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제 가족을 부양할 수 없으니까요."

Q.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그것도 가장 사람이 많은 출퇴근 시간대에 그림이 가능합니까?

"버스만큼 흔들리지는 않죠. 버스도 시도해봤지만 힘들었습니다. 지하철은 앉는 것보다 서서 그리는 게 오히려 편합니다. 앉으면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지하철은 또 등을 기댈 수도 있잖아요.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완성도나 정교함보다는 빠르게 판단하고 느끼고 표현하다 보니 지금 같은 단순하면서도 압축적인 스타일이 탄생한 거 같아요. 물론 그 단순함 속에 아름다움도 담으려고 노력하죠."

Q. 전국시사만화협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는데 이 단체와 인연은 어떻게 되나요? 지금 그림과 시사만화는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게임회사 재직 초반 즈음에, 대략 33살 정도였던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깜깜했습니다. 당시 아내와 두 아이들(지금은 셋)을 외벌이로 책임지는 데 게임회사라는 곳은 너무 불안정하고 위험하고 수명도 짧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당장 어떻게 방법이 없으니 10년 정도 게임업계에서 버티면서 다른 것도 준비하자 결심했고, 일단 그림을 10년 동안 매일 그리다 보면 뭔가 답을 찾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 주제 없이 그리다 보니 동기부여가 급격히 떨어지더군요. 그래서 관심이 많은 시사 문제를 그려보자 생각했고 관련 동호회를 찼아봤죠. 전국시사만화협회를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제 발로 찾아갔죠. 사무국장은 4년 전에 이어 최근 두 번째로 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는 시사만화는 거의 안 그리는 거죠?

"협회에 들어가 2012년까지는 정말 열심히 그렸죠. 2007년 대선 때는 오마이뉴스 같은 곳에 투고도 하고 그랬습니다. 언론사 공채 지원도 했구요. 하지만 잘 안되더군요.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후회 없이 할 만큼 했다, 그만하자. 이 판은 너무 좁고 기회도 적다. 그래도 그림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그리기 시작한 게 요즘 그리는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시사만화가 안 맞기도 했습니다. 멘탈이 강하지 않으면 굉장히 괴롭습니다. 뭔가 비판 거리를 찾아내서 강하게, 공격적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제가 좀 여리고 감성적이거든요."

Q. 작가님은 자신의 일상, 특히 가족과 관련된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고 작가님께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현재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은 장인어른, 아내, 첫째 딸, 둘째 아들, 셋째 딸 이렇게 6명입니다. 가끔씩 아니 자주 생각해보죠. 제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뭐 그것도 나름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이리저리 상상을 해보아도 지금 아내와 아이들이 제게 주고 있는 깊은 기쁨과 안정감과 용기는 얻기 힘들었을 거라고 늘 결론이 납니다."

가족은 기쁨과 안정감과 용기의 원천

Q. 작가로서 직업 철학, 원칙, 목표 같은 게 있습니까.

"매일 하나씩은 그리고 쓰자는 원칙을 지키려고 늘 애를 쓰고 있구요. 그리고 이런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유혹을 받게 되는 게 정직하지 못함이더라구요. 여러 의미가 있는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장르가 상상의 영역이 많다 보니 어쩌면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 담고자 하는 것들은 진실이거든요. 가끔 없는 진실을 지어내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땐 차라리 쓰고 그리지 않더라도 정직하자고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너무나 매력적인 글이나 그림을 보더라도 따라 하진 말자. 잠시 따라 하더라도 빨리 버리자, 오래 걸리더라도 내 것을 만들자는 다짐을 합니다. 매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장 자끄 상뻬(프랑스 삽화가)였어요. 정말 미친 듯이 따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로부터 벗어나려는데 안되는 거예요. 따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벗어나는 건 더 힘들더라구요. 지금 제 작업에서 장 자끄 상뻬가 보이면 아예 버리거나 다시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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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여름 가족과 함께 놀러간 순천 낙안읍성에서. 왼쪽부터 하 작가 부인인 이경주 씨, 막내 하유솔, 첫째 하유진, 하 작가, 둘째 하유솔. 등만 보이는 남자아이는 모르는 아이라고 한다. / 하재욱 만화가

Q. 안 그래도 그 질문을 드리려 했는데 그림이 비슷하다는 평이 많더군요. 그렇게 고민하는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고 봅니까?

"주변에 자주 물어봅니다. 비슷하다는 말도 있고 잘 모르겠다는 말도 있고. 심지어 전 시사만화에도 장 자끄 상뻬식 그림을 도입했거든요. 선배들이 걱정스럽게 말했죠. 왜 흉내를 내느냐고. 전 그래도 제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6~7년 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시사만화대회에 갔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간 상뻬의 그림은 출판물로만 봤는데 실제 그림과 똑같은 모습의 노인 등이 걸어 다니는 거예요. 상뻬는 자기 주변 사람을, 자기들 사는 모습을 그렇게 그린 거였는데 저는 내 주변을 그리기보다 상뻬 그림만 따라 한 거죠."

Q. 고향인 진주를 포함해 경남 쪽에 종종 갈 일이 있는지?

"진주는 1년에 4번 꼭 가게 됩니다. 아버지 기일, 어머니 기일, 추석, 설날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부산을 너무 좋아해서 시사만화협회 일이 있을 때 또는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할 때 갑니다. 부산에 시사만화 선배와 후배가 많습니다."

Q. 작가 활동, 회사 일 외에 특별한 취미나 공부하는 분야가 있습니까.

"술안주 연구가 취미…."

Q. 맛집을 찾아다니는 건가요? 아니면 요리?

"아니요. 술을 좋아한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술 마시는 게 취미죠. 주말 외에 거의 매일. 와이프는 물론 싫어하는데 사람이 좋고 술이 좋은데 어쩌겠습니까."

Q. 앞으로 삶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하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적어도 따분하진 않으니까요.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있는 것이 목표구요. 개인 작업에서는 조금 더 깊이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깊이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르겠으나 조직 생활을 그만둘 때까진 찾아내고 싶어요. 그래서 당장 독자들 입맛에 맞추는 작업보다는 이리저리 헤매고 맞추고 실험해 보는 작업을 당분간은 계속할 듯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타나는 길이 있을 거라 믿어요. 지금의 저도 그렇게 시작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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