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익숙한 무대와 공연, 10년 후엔 세계 무대로

지리산 구재봉 중턱 해발 400m의 전형적인 산골 마을.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하동 먹점골은 봄이면 마을 전체가 온통 하얀 매화로 뒤덮여 거대한 꽃동산을 이룬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에게는 밝은 에너지가 잠재돼 있다. 온 마을을 뒤엎은 그윽한 매화 향은 아이의 남다른 감수성을 꿈틀거리게 했으리라. 꽃을 사랑하고 음악을 즐기며 사람을 가까이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주체할 수 없는 끼도 갖췄다. 하동초등학교 여아정(6학년·12) 양은 수줍은 듯 무표정한 표정을 짓다가도 장구를 어깨에다 비스듬히 둘러메고 표정으로 몸으로 춤을 추면 하얀 매화를 연상케 한다.

태어나보니 집이 축제장이자 무대

아정 양 부모 여태주(47)·이수민(49) 씨는 하동에서는 꽤 유명한 '산골 매실농원' 주인이다. 손재주가 좋은 부부가 25년간 직접 다듬어 만든 곳으로 집 자체가 볼거리가 된다.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의 아름다움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부부는 아정 양이 태어나기 전부터 농원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서각 작품·미술·사진전은 물론 지인을 초청해 노래 공연을 이어갔다. 일명 '금수저'를 일컬어 '태어나보니 부모가 김태희(장동건)이었다'는 유행어처럼 아정 양 역시 태어나보니 부모가 여태주, 집이 무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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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익숙한 무대와 공연, 10년 후엔 세계 무대로. / 김구연 기자

이 씨는 "아정이는 돌 전부터 음악을 틀어주면 몸을 흔들었고, 말이 서툰 아기 때는 음악을 듣다가도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지인들이 와서 공연할 때 2~3살 아정이도 마이크를 잡고 동요를 곧잘 불렀던 걸 떠올려 보면, 아정이에게 무대와 공연은 익숙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8년을 이어온 산골 매실농원 음악회는 아정이 동생이 태어나면서 중단됐다. 3월 동생이 태어나고 매화가 만발할 때 이 씨가 몸조리를 하면서 한 해 쉬게 됐다. 연년생으로 또 동생이 태어나고 매실과 자식 농사로 축제를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흥 부자' 여 씨네 가족의 음악 활동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 하동을 대표하는 풍물놀이패 '놀이판 들뫼(성인부)' 회원으로 아정이 삼촌이, 들뫼 소속의 '하울림(청소년부)' 회원으로 사촌 오빠가 활동하고 있다. 아정 양은 풍물놀이 연습이 있을 때마다 따라다니며 놀았고, 3학년 때 하울림 회원이 돼 본격적으로 장구를 배우게 됐다.

아정 양은 학교에서 플루트를 배우며 재능을 확인하고 있었던 터라 풍물놀이를 매일 접하다시피 하면서도 시작이 늦은 편이다. 아정 양이 이끌림에 풍물놀이를 시작했을 때 이 씨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권했다. 어릴 때부터 유독 좋아한 한복을 자주 입을 수 있단 말에 플루트 대신 장구를 선택한 아정 양. 남보다 짧은 기간 내 초등학교 고학년 중 '전국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집중력·해석력·성실함 3박자 갖춘 스타

박재홍 들뫼 회장과 여두화 하울림 단장은 아정 양의 장점을 '연기'로 압축했다. 음악성을 바탕으로 손짓이나 표정 등 풍물놀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재능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했다. 아정 양은 장구가 주특기지만 무용, 해금, 피아노, 판소리를 같이 배우고 있다. 특히 무용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박 부단장은 "아정이는 집중력과 곡 해석력이 좋다. 여기에 성실함을 갖춰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울림은 주 4회·하루 3시간씩을 연습하고 주말에도 연습 아니면 공연을 한다. 아정 양은 한 명이라도 빠지면 놀이패 연습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강인하고 밝은 성격은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하울림은 전국 규모 국악경연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휩쓸며 경남 대표 청소년 예술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풍물놀이 특성상 단체상으로 평가받지만 아정 양은 지난해 '제21회 창원 야철 전국 국악대전'에서 장고 개인 장려상을 받았다. 초·중학생이 같이 경연한 곳에서 초등 5학년 수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 단장은 "아정이 장구 실력은 전국 초등학생 장고 부문 최고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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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아정 하동초등학교 학생. / 김구연 기자

풍물은 꽹과리, 북, 소고 등 여러 악기가 있다. 아정 양이 특별히 장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아정 양은 "그냥 당연했다"고 했다.

장구는 개인 공연도 있지만 풍물놀이에서 주요 악기의 연주를 보조하거나 부각시키기 위한 반주 역할이 크다. 공연 내내 바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박 부단장은 "아정이는 가락 맛을 살릴 줄 알고 농악판 전체를 이해하고 있다. 0.1초 빠르고 느린 것과 힘의 강약 등 리듬을 가지고 논다. 무엇보다 아정이가 장구를 치지 않으면 이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하울림은 4~6월·9~11월 6개월 동안 월평균 5번 공연을 한다. 하동에서 가장 큰 축제인 하동 제첩축제(31일~9월 2일) 때 2번 공연이 예정돼 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공연을 했지만 아정 양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2016년부터 남이섬을 꼽았다. 풍물놀이패를 동그랗게 둘러싼 사람 띠가 20줄이 넘었다. 아정 양이 기억하는 가장 큰 공연이다. 그때의 분위기와 희열을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아정 양에 이어 남동생과 사촌 동생도 하울림 회원이 돼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정 양 부모도 다시 축제를 기획해 즐기고 있다. 먹점마을회 대표이기도 아정이 아버지는 지난해부터 '섬진강 먹점골 매화꽃 나들이' 축제를 열었다. 첫해는 역시나 산골 매실농원에서 열렸고, 2회를 맞은 올해는 마을 회관에서 열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정 양은 10년 후 국외에 우리나라 전통 사물놀이를 알리고자 세계를 여행하는 상상을 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음악으로 표현하고, 마음을 나누는 참 재밌는 가족과 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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