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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보는 눈] (4) 불교의 등장과 불상의 역사-초기 Part.1

무표정한 얼굴·두 손 모은 좌상서 삼국시대 '집단의 개성' 반영해
고구려 '전투적 기질' 담겨 있어
백제, 옷주름 등 둥글하게 처리
신라, 차분한 얼굴·소박한 자세

최형균(LH 총무고객처) talktalk@lh.or.kr 2018년 09월 03일 월요일

이번 주는 불상의 이름을 붙이는 법을 먼저 짚어 보고자 한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데…, 뭘 알아야 이름을 부를 것 아니겠는가?

◇불상의 이름을 붙여 보자

일반적으로 가장 앞에는 불상이 있거나 출토된 장소가 온다.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은 '서산'에 있고 감산사지 석조여래입상은 '감산사'라는 절터에서 출토된 불상이다. 이건 불상만 그런 것은 아니고 거의 모든 예술품에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가장 유명한 비너스상 중 하나인 두 팔이 없는 대리석 비너스상을 밀로의 비너스상(Venus de Milo)이라 부르는 것도 밀로스(Milos)라는 섬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드물게 제작 연도가 오는 경우도 있다. 이건 정말 특별한 경우로 학자들에게는 둘도 없는 축복이다. 유물의 연대를 파악하는 것은 모든 역사학의 기본인데 말 못하는 불상을 붙잡고 물어봤자 답을 할 리는 없으니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불상은 얼마나 희귀하고 반가운 연구대상이겠는가? 그래서 연대를 알 수 있는 불상은 거의 이름 가장 앞에 그 특징을 적는다. 연가7년명(延嘉七年銘) 금동여래입상 같은 경우다. 연가 7년이 불상을 만든 연대이고, 명(銘)은 기물에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이 불상은 연가 7년에 만들었다는 글이 새겨진 불상이다.

▲ 뚝섬 출토 금동불좌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진1> /국립중앙박물관

그다음엔 불상의 재료나 제작방법을 쓴다. 금동여래상·석조여래상 등등인데 금동은 금과 동의 화합물이고, 석은 말씀 안 드려도 아실 것이다. 그리고 제작기법이 나온다. 마애(磨崖)상은 바위에 새긴 불상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찰흙 같은 재료로 덧붙여가면서 만든 소조(塑造) 상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보통 불상의 자세를 적는다. 입상(立像)은 서 있는 상, 좌상(坐像)은 앉아있는 상이고 앉아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반가는 이 결가부좌에서 한발을 풀어 내린 모습이다. 그러면 도상을 통해 알아낸 부처의 이름은 어디에 들어갈까? 보통 자세 앞에 넣는다.

이제 실전이다. '부석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을 생각해보자. 이름만으로도 이 불상은 부석사에 있고 반죽을 해서 모양을 만들었으며 아미타불이 앉아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 전래 무렵의 우리나라 불상-선정인 좌상

<사진 1>을 보자. 뚝섬에서 발견된 성인들의 손가락 두 마디 높이가 채 안 되는 작은 이 불상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모가 심해 자세한 모습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발은 결가부좌, 양손은 단전에 가지런히 모은 채 선정을 하고 있는(선정인·禪定印) 부처를 나타낸 상(像)이다.

그리고 대좌 양끝에는 사자가 새겨져 있다. 통상 이런 모습의 불상을 '선정인 좌상'이라고 한다. 이 도상의 불상들은 대좌에 새겨진 사자 두 마리를 근거로 석가모니 부처를 나타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석가모니의 설법을 사자후(獅子吼)라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 사자는 석가모니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이 불상이 가장 오래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모습 때문이다. 이런 평범한 모습의 선정인 좌상은 우리나라보다 200년쯤 앞서 불교를 받아들인 중국의 예를 봐도 가장 빠른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 고구려에서 불교가 공인(372년)되고 약 100년쯤 지난 후, 집안현 장천리 1호분 벽화에 불상이 등장하는데 역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뚝섬 출토 금동불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이 두 가지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처의 모습이다.

◇선정인 불상의 현지화

이런 모습의 불상은 처음에는 새로운 존재를 상징하는 조각상으로 당시 사람들한테 다가갔던 것 같다. 그래서 무표정한 얼굴, 틀에 박힌 모습으로 한동안 큰 변화 없이 만들어지다가 어느 순간 현지화를 거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름표나 안내문도 없는 몇몇 불상 가운데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선정인 불상을 확인할 수 있다. 평양 원오리사지 소조불좌상(사진 2),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329호, 사진 3) 그리고 경주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보물 198호, 사진 4)이다.

이 불상들은 뚝섬에서 출토된 불상과 비교해서 거의 100년쯤 지난 6세기 중후반에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모두 집단의 개성을 반영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했고 대좌에 사자가 생략되면서 어떤 부처를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 각자 만들고 싶은 혹은 이상적으로 생각한 모습을 표현한 불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백제 불상은 유홍준 선생의 말에 의하면 고개가 약간 삐딱한 여섯 시 오 분이다. 얼굴도 둥글, 옷 주름도 둥글둥글, 진지한 선정이 아니라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고구려 불상 역시 친근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백제와 비교해보면 얼굴은 조금 더 진중하고 옷 주름 끝단은 전투적인 고구려인의 기질을 나타내듯 뾰족하게 처리되었다. 신라는 셋 중에서 가장 뒤인 7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고구려나 백제의 것과는 달리 경주 남산 기슭에 있는 바위를 파고 만들었다.

이 동굴 같은 감실 덕에 야외에 있음에도 비교적 양호한 형태로 남아 있다. 별명이 할머니 부처일 정도로 차분하고 친근한 얼굴 그리고 소박한 자세(심지어 결가부좌한 발은 버선을 신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로 1400여 년 동안 한자리에 있었던 이 부처는 불상과 탑들이 가득한 경주 남산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처음에 말했듯이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만든 불상이 이런 선정인 불좌상이기 때문이다.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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