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카리오>는 경계에서 시작합니다. 애리조나는 멕시코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멕시코 이민자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줄지어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곳입니다. 멕시코인들은 애리조나를 기회의 땅이 시작되는 곳으로, 현지인들에게는 흘러오는 잠재적 범죄자와 경제적 약탈자들을 막아야 하는 방파제로 기능하는 곳입니다.

마약은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남미의 카르텔을 통해 미국으로 반입되는 마약은 미국의 경계를 뛰어넘어 미국을 부패시키고, 패권을 가능케 했던 시스템을 마비시킵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위협이며, 패권이 가지는 통제력을 약화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관리되어야 하고, 그들이 지니는 패권을 통해 이를 통제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패권이 지니는 폭력성과 은밀성은 안티테제를 양성시켰고, 이에 따른 내외부의 반발은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패권유지를 위한 새로운 공작과 반대 공작을 양성시킵니다.

영화 속에서 중심이 되는 3명의 인물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는 축을 대변합니다. 차출된 FBI 요원인 케이트는 법적인 테두리와 윤리 도덕적인 책임을 끊임없이 제기합니다. 반대로 CIA 요원인 맷은 패권을 유지키 위해 경계를 넘어선 통제를 시도합니다. 이는 굉장히 비도덕적이고 초법적인 행태로 전개되기에 위험천만하게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미스터리한 인물인 알레한드로는 경계와 통제를 넘나들며 사적인 목적을 채우려 합니다.

세 인물이 가지는 자기 논리에 의한 충돌은 이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큰 주춧돌입니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상대방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케이트의 문제 제기에, 맷은 거악의 제거를 위한 필요악의 존재를 역설하고,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는다는 알레한드로의 슬픈 개인사는 선악이 혼재되어 가치판단이 불가능케 하는 현실의 모호함을 대변케 합니다.

이들 각각의 논리는 결국 패권의 유지와 통제의 논리로 귀결됩니다. 맷과 알레한드로는 통제와 사적 목표라는 공동의 이익을 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을 통해 취득하고, 결국 케이트는 알레한드로를 겨눈 총구를 거두어들입니다. 도덕적이고 절차를 중시하는 케이트가 계단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겨눈 총구를 거두는 그 모습은 어쩌면 이상주의가 세속적 필요악의 존재를 마지못해 인정하는 모습처럼 비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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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는 앞서 논한 각각의 축을 스릴러의 문법 속에 성공적으로 녹여냅니다.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첫 시퀀스의 강렬함은 물론이며, 경계에서 벌어지는 총격시퀀스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호흡은 관객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후반의 터널시퀀스에 이르러선 소리와 최소한의 빛만 가지고도 그 어떤 스릴러 영화도 쉽게 이루지 못하는 서스펜스를 충분히 만들어냅니다. <시카리오>는 스릴러라는 형식이 가지는 기능적인 측면과 패권의 통제 논리가 가지는 충돌들을 다룬 내용적 측면을 조화롭게 소화한 수작입니다. 개개인으로 의인화된 각각의 정치 논리들은 정치적 올바름과 필요악이라는 경계에서 각자의 처지를 대변하고, 그 올바름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분분한 결말을 만들어냅니다. 다만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결론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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