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올여름은 더욱 그렇다. 계곡에 발 담그고 멍 때리기 하거나, 시원한 물속에 풍덩 빠져 유유자적 지내고 싶은 맘.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더운 여름날 물 안에서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들이 있다. 물 안이 훨씬 시원하고 좋을 텐데 어쩐 일인지 물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 어떤 동물들일까? 갯벌 위를 가만가만 유심히 관찰해 보면 이들 모습이 포착된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들. 바로 짱뚱어와 말뚝망둥어 들이다. 분명 물고기들인데 간조 때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 위를 기어 다니거나 걸어 다니고 있다. 물 위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헤엄을 칠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물 밖으로 나온 것일까? 짱뚱어와 말뚝망둥어는 망둑어과에 속하는 종인데 전 세계에는 약 1900여 종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로는 이들을 총칭해 머드스키퍼(Mudskipper)라고 부른다. '갯벌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물고기'란 의미다.

이들이 물 밖으로 나온 이유는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에 사는 많은 생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 우리의 먼 조상은 약 3억 년 이전에 수중에서 육상으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견해에 따르면 모든 생명의 시작은 물속이었다. 식물도 최초에는 물속에서만 생활하고 있었다. 약 5억~4억 5000만 년 전쯤 이끼와 같은 식물이 처음 육상에 진출한 것으로 여겨진다. 식물에 이어 물속에서 물 밖으로 나온 최초의 동물들로는 새우, 게, 곤충 등이 있다. 진드기, 톡토기, 노래기, 지네, 거미 등도 개척자였다. 이어서 약 3억 8500~6500만 년 전쯤 최초의 척추동물이 뭍으로 올라왔다. 어류는 척추동물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 중 망둑어과 어류의 가장 오래된 화석은 약 5000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척추동물이 육상으로 진출한 후 약 3억 년이 지난 후에 망둑어류가 나타난 것이다. 짱뚱어나 말뚝망둥어는 그 후에 육상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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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뚝망둥어 무리.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아마도 물과 육지의 중간에 해당하는 갯벌에서 먹이를 찾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볼 뿐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말뚝망둥어가 수중에서도 생활 가능한지를 실험해본 결과 적당한 환경이 주어지면 물속에서도 죽는 일 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애써 물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신기할 따름이다.

짱뚱어는 주로 갯벌에서 생활한다. 갯벌은 간조 때 모습을 드러내는 넓은 해저 부분을 가리킨다. 갯벌은 종류가 꽤나 다양하다. 사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뻘 갯벌도 있고, 가는 모래만으로 구성된 모래 갯벌, 뻘과 모래가 혼합되어 있는 혼합갯벌도 있다. 뻘 갯벌은 주로 파도의 영향이 강하지 않은 내만에서 볼 수 있는데 순천만, 사천 광포만, 창원 봉암 갯벌 등이 있다. 미세한 진흙이 머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들이다. 모래갯벌은 푸른 해송 숲이 넓게 펼쳐져 있는 해수욕장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혼합갯벌은 뻘 갯벌과 모래갯벌의 중간쯤에 형성되어 있다. 뻘과 모래, 자갈이 혼합되어 있는 갯벌이다.

짱뚱어가 살아가는 곳은 미세한 진흙으로 구성된 뻘 갯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지방 갯벌에 많이 서식하는데 조선시대 말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는 철목어(凸目漁)라 기록되어있다. 요철처럼 튀어나온 눈을 가장 큰 특징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서유구가 지은 <전어지>에는 한글로 '장뚜이'라 이름 붙여져 있다. '장뚜이', '잠둥어'가 짱뚱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 모양이다. 생긴 모양을 보면 이렇게 이름 붙여진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눈은 작고 눈 사이는 좁은데 눈이 머리 꼭대기 옆에 붙어 있다. 주둥이는 짧고 끝은 둥글게 보인다. 자세히 보면 생긴 모양이 매우 독특하다. 몸 빛깔은 약간 푸른색이고 배 쪽은 연한 색인데 몸쪽엔 흰색 작은 점이 흩어져 있다. 제1 등지느러미, 제2 등지느러미 그리고 꼬리지느러미가 있는데 다른 짱뚱어를 경계하거나 공격할 때는 지느러미를 모두 펼치기도 한다. 등지느러미를 펼친 모습이 특이하고 예뻐서 사진작가들 사랑을 듬뿍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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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뚝망둥어가 사는 갯벌.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시간 여유를 가지고 짱뚱어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사람이 다가가거나 자리에서 일어서면 순식간에 자신이 파놓은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10여 분이 지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을 살피기도 하는데 특히 날아가는 새를 경계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천적이 다가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양이다. 짱뚱어를 먹이로 하는 동물은 주로 왜가리와 백로들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살며시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어 주변 물체를 살피는데 자세히 보면 두 눈이 잠수함에서 내민 망원경처럼 보인다. 가까운 물웅덩이나 자신이 사는 구멍에 고여 있는 물을 입에 넣고 행동권에 뿌리는 습성도 볼 수 있다. 짱뚱어가 좋아하는 먹이는 주로 갯벌 표면 위에 있는 규조류다. 짱뚱어가 먹이를 먹을 때는 주변에 발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슴지느러미 자국이다. 중심을 서식하는 구멍의 물웅덩이에 두고 갯벌 표면에서 방사형으로 움직이면서 규조류를 핥아 먹는다. 갯벌 표면이 건조해질 때까지 먹이활동을 계속하다 입으로 물을 뿌려 표면을 습하게 유지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뻘은 뱉어내고 규조류만 먹는다.

짱뚱어가 초식성인데 비해 말뚝망둥어는 육식성이다. 망둑어과에 속하는 어류 중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종류는 말뚝망둥어를 비롯하여 문절망둑, 짱뚱어, 밀어 등 42종이 있다. 말뚝망둥어는 서·남해안에 분포하고 있는데 게, 갯지렁이, 곤충 등을 잡아먹는다. 말뚝망둥어는 간조 때 갯벌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먹이를 섭취하고,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조수를 피해 물가로 이동한다. 벼랑이나 돌 위에서 다음 물 때를 기다리는데 어부들이 박아놓은 말뚝에 붙어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말뚝망둥어란 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간조 때에도 물가 가까운 곳에서 돌아다니거나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짱뚱어는 미세한 진흙 갯벌에서 주로 살아가는데 비해 말뚝망둥어는 갯벌이 있는 서·남해안 해안가 곳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조가 되면 해안가에 나와 모여 있다가 사람이나 천적이 다가가면 물 위를 뛰어 도망가기도 한다. 말뚝망둥어는 갯벌 위를 배회하면서 가끔씩 주둥이를 뻘 속으로 집어넣는 경우가 있는데 갯벌 속에 있는 게나 갯지렁이류를 사냥하는 경우다. 습기가 있는 상태에서는 22~60시간 정도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살 수 있는데, 물 밖으로 나오면 공기 호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 위를 낮게 날아다니는 곤충이나 갯벌 주변에 살고 있는 갑각류, 갯지렁이 등을 잡아먹고 산다.

짱뚱어가 영역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비해 말뚝망둥어는 영역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뚝망둥어 수컷은 갯벌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서 반복해 진흙을 구멍 밖으로 물어 나른다. 산란을 위한 서식 구멍을 만드는 행동이다. 갯벌에 진흙으로 만들어진 담이 보이면 수컷이 만든 산란공일 가능성이 크다. 구애 행동도 독특하다. 짱뚱어 수컷은 갯벌 위에서 높이뛰기와 춤추기를 반복하면서 암컷을 유혹한다. 열정적이고 격한 사랑의 표현이다. 말뚝망둥어는 요염하게 몸을 비비 꼬는 행동을 보인다. 자기 몸 색깔을 변화시키기도 하는데 분홍 또는 오렌지색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몸 색깔을 혼인색으로 바꾸는 특성이다. 짝짓기에 성공한 짱뚱어와 말뚝망둥어는 평균 5000개에서 6000개 정도의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짱뚱어와 말뚝망둥어의 산란 시기는 5월부터 7월 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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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둥어.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산란을 마치고 알이 깨어나 치어들이 성장해가면 겨울이 다가온다. 이 무렵부터는 동면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짱뚱어와 말뚝망둥어가 갯벌이나 해안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10월 까지다. 11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는 대부분 뻘 안에서 지낸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서 많은 수의 어린 개체들이 추위와 먹이 부족 때문에 살아남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남 순천, 보성, 벌교에서는 짱뚱어를 토속 음식으로, 보양식으로 즐겨 먹기도 한다. 특히 겨울에 맛이 좋다고 하는데 지금도 짱뚱어탕을 내놓는 식당들이 제법 있다. 짱뚱어탕 요리는 마늘, 고춧가루, 된장을 넣어 끓인 물에 짱뚱어 쓸개만 버리고 전체를 넣어 끓인다. 지역에 따라 조리 방법은 약간씩 다르다. 짱뚱어는 단백질이 풍부하며 여름철 체력 보강에 좋고, 타우린이 함유되어 있어 피로 회복과 간 기능 개선에 효과적이다. 또한 비타민이 풍부하여 면역력 증진과 피부 미용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짱뚱어를 잡는 방법은 갯벌 한가운데 조용히 서서 낚싯대에 매달린 짱뚱어 낚시를 갯벌 위로 던져 짱뚱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끌면서 낚아채는 방식이다. 재빨리 낚아채서 짱뚱어 몸이 낚싯바늘에 걸리게 하는 '훌치기' 낚시다. 흙을 파고 들어가서 짱뚱어를 잡는 방법도 있는데 이 방법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일본, 중국 남부, 대만, 베트남에서는 양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양념구이, 탕, 전골, 튀김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많던 짱뚱어와 말뚝망둥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자꾸만 갯벌을 매립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바다와 갯벌에 변화가 일어난 결과라고 한다. 간척 사업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진행된 일본의 경우 짱뚱어는 절멸 위기, 말뚝망둥어는 준 절멸 위기로 분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짱뚱어도 말뚝망둥어도 바다와 갯벌에서 수천만 년을 살아온 생물들이다. 이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더 이상의 갯벌 매립만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 지구가 더 뜨거워지고 사람이 살기 힘들만큼 망가지기 전에 우리부터 정신 차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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