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 수용하는 태도
세상만물 저마다 가치·존재이유 달라

'다른 것'과 '틀린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다른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이고, 틀린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틀렸다는 것은 결국 같지 않으면 잘못되었다는 말인데 이것은 억지이고, 엄청난 비약인데도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립니다.

한때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남일 수도 있고, 남이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꼭 남이 아니어야만 합니까? 그리고 이렇게 무식하게 몰아치더라도 소신껏 '그래 남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표현도 하지 않고, 남이 아닌 것으로 묻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이것은 폭력에 대한 묵인이고, 자존감마저도 포기하는 것으로 냉정하게 말하면 비겁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모두가 같아야 하고 다르면 왜 그렇게 잔인해지는 것입니까? 다르면 무조건 적이고, 적이면 무조건 때려 부숴야 합니까? 이것이 이윤만을 극대화하려는 신자유주의가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똑같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가운데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인데 어떻게 다르다는 것 때문에 차별하고 학대할 수 있습니까?

같음이 힘이고, 성공이고, 번영을 가져다주는지는 몰라도 같음은 나 없음뿐 아니라 너마저도 파괴시키는 괴력이고,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고 하기에 모든 것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삼키는 괴물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같음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 길만이 살길이라 생각하는지 몰라도 그러나 '이 길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역부족일지 몰라도 이 괴물과 맞서는 길은 잃어버린 나를 찾고, 스스로 나를 높이고,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부지런히 '아니요!'를 외치는 길밖에 없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아니요!'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지만 정말 잘 사는 길은 내가 '아니요!' 할 것을 '아니요!' 할 때 빛이 있을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잘 산다 하더라도 내가 '아니요!' 할 수 없는 나라면 나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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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소위 길, 진리, 빛이라는 것에 대한 '아니요!' 선언이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시대의 구원은 '같음', '좋아요!'가 아니라 '아니요!'에서 시작될 것이고, '아니요!' 없는 삶이 공허한 것과 함께 '아니요!' 없는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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