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말만 들어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단어다. 나에게는 머나먼 이야기일 듯 가깝지 않았던 이 단어가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그것도 '더블'로 나를 찾아왔다. 나에게는 항상 나를 반겨주던 할머니 두 분이 계신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다. 항상 내 얼굴을 보며 방긋 웃어주시던 할머니들은 이제 누워계신다.

외할머니는 1년 전 치매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물었던 질문을 반복할 뿐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그것만으로도 어찌나 행복했던지 모른다. 그리고 반년 동안 엄마는 딸이라는 이름으로 매일매일 할머니에게 못다 한 효도를 했다. 여기서 다시 해피엔딩을 기다렸지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위암. 그 이름도 무서운 위암이었다.

엄마는 선택의 연속에서 항상 무서워했다. 수술하지 않으면 두 달의 시간만이 할머니에겐 있었다. 하지만 수술을 선택하면 수술 중 돌아가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성공한다면 할머니는 조금 더 우리 곁에 머물 수 있었다. 이러한 무서운 선택 속에서 엄마는 괴로워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엄마는 할머니를 아직 보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수술을 선택했다. 외할머니는 지금 일어나실 수는 없지만 암 판정 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내 이름을 불러주신다. 엄마는 여전히 매일 할머니 집으로 출퇴근한다.

친할머니는 건강하셨다. 하지만 두 달 전 대장암 판정을 받으셨고, 친할머니 역시도 똑같은 선택지에 놓여 있었다. 수술 여부를 두고 나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아빠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말 때문이었다. 의사는 할머니가 나이가 있기 때문에 수술하지 않아도 젊은 사람보다는 암의 발전 속도가 느리다 해도 수술보다는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만약 수술하게 된다면 더 오래 할머니를 볼 수 있지만, 항암치료부터 많은 고통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아빠는 고민했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지금 친할머니는 많이 아파하신다. 왜 이 수술을 하게 했냐고 화를 내신다. 아빠는 과연 후회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엄마, 아빠는 후회하지 않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효도를 아직 더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내가 부모님과 같은 선택지에 놓였다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나도 부모님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효도라는 것은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항상 그저 내가 행복하게만 살아 준다면 그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 많은 것을 해드리고 싶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게 해드리고 싶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싶고, 같이 많은 것들을 하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의 웃는 얼굴을 많이 많이 보고 싶다.

진정한 효도란 무엇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효도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들을 보면서 덜컥 조급해지기도 했다. 지금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해드려야 할 것 같은 조급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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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지금 효도를 하고 있는가. 나는 할머니들과 부모님을 보면서 효도라는 것의 의미와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효도라는 것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진정한 의미는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무게는 모두 아주 무거울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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