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추천도서만 강요해선 안돼
읽는 힘 기르려면 많이 읽는 습관 중요

주말 부부라 격주로 서울에 간다. 지난주에도 다녀왔는데 내려오는 길에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요새 마음 다잡고 공부에 매진하려고 하는데 왜 또 '로봇장난감엑스포'에 데려가고 로봇 책, 밀리터리 책 등을 사줘서 아이 마음을 흔들고 가느냐는 거였다. '아니 당신 허락받고 아들이랑 거기 간 거잖아요'라고 바로 답신을 보내려 하다가 그만뒀다. 그렇게 글 남기면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중학생 큰딸이고 초등학생 둘째 아들이고 책을 안 읽는다며 걱정이다. 우리 애들은 학교공부도 해야 하고, 학원숙제도 해야 하고, 거기에 엄마랑 별도로 '스페셜 학습'도 해야 하니 참 바쁘다. 그리고 아내가 추천한 책들, 탈무드니 명심보감이니 그런 책들도 꾸준히 읽어줘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이 절대적인 학습량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스마트폰 게임, SNS, 유튜브 영상 등으로 틈틈이 노는 시간도 제법 많다. 아이 엄마는 아이들이 그렇게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독서로 대체하고 싶어 하는 듯한데 그게 잘 안되어 많이 답답해한다. 그런 아이들을 채찍과 당근을 적당히 곁들여 어떻게든 공부나 추천도서 독서로 돌리려고 사투 중인데 아이 아빠라는 사람이 가끔 와서 그걸 흔들고 가버리니 아내 처지에서도 천불이 날만하다.

생각해보면 초중고 시절에 참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에 가고, 제대 후 사법시험 공부를 하면서는 학습을 위한 책 외에는 순수한 독서는 거의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유년시절 독서습관을 통해 얻은 속독 능력, 독해력, 어휘력, 문장 파악 능력 등이 고시 공부할 때뿐만이 아니고 지금 변호사 하면서 접하는 수많은 문서를 소화하는 데 참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초중고 시절 잡히는 대로 읽었던 책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편식이었다. 그 시절에도 세계 100대 고전 등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추천도서가 참 많았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셰익스피어의 4대 고전 정도만 읽었을 뿐 대부분은 추천도서와 무관한 추리소설, 전쟁사, 로봇 애니메이션 백과, 모형잡지, 밀리터리류 서적들만 주야장천 읽었다. 삼국지연의도 여러 차례 완독하긴 했지만 그건 추천도서라 읽었던 게 아니고 좋아하는 전쟁사와 관련된 분야라서 읽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책들만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서라는 취미 겸 특기가 생겼고, 문자에 익숙해졌다. 즉, 내용이 뭐가 되었든 읽는 것에서만큼은 자신감이 생겼다. 산골 '컨트리보이'가 서울 와서 '시티보이'들과 경쟁해야 했지만 다른 건 다 모르겠는데 읽고 파악하는 능력만큼은 절대 꿀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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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무지렁이 부모님은 그저 자식이 책 산다고 돈 달라 하면 그 책이 뭔지 물어보지도 않고 달라는 대로 주었다. 만약 부모님이 이 책 봐라, 저 책 사라 간섭했다면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을까.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읽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재미나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근육도 운동할수록 단련되고 뇌도 쓸수록 단련되듯이 독서도 뭐가 되었든 우선은 많이 읽고 봐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아닐까. 그 이상은 아이의 몫이다. 생각지도 않게 글을 쓰면서 부모님께 참 많은 것을 빚졌구나 생각이 든다.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가면 부모님께 감사 말씀이라도 드려야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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