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라의 곤드레만드레] (8) 못다 한 이야기
새뮤얼 애덤스 보스턴 라거
부담없는 대중적인 맛
달콤한 풍미 입안 가득
벨기에산 야생효모 술 람빅
상면발효로 만든 에일
식전주·디저트와 함께

이 연재를 시작한 게 지난해 12월이다. 마음 깊이 의지하는 선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보는 게 어떠냐고 했던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시민사회부 기자로 경찰서에 출입하고 있었다. 바빴고, 바빴다. 그저 바쁘기만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이따금 스스로가 공허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때로 참을 만했고 때로 나를 눈물 나게 했다.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고 나는 시민사회부로 오기 전 적을 두고 있었던 편집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선배가 다시 이야기했다.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좋아하는 맥주에 대해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렇게 이 연재가 시작됐다. 취업 준비생이던 시절부터 어느덧 7년 차 기자가 된 지금까지, 깊은 밤 선생처럼 내 곁에 있었던 맥주에 대해 8번의 연재와 한 번의 스핀오프(영화·드라마 등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또는 그런 작품)를 썼다. 이 맥주는 이 사람이랑 자주 마셨지, 이 맥주는 그 친구가 소개해줬지, 맞아, 그래. 연재를 쓰는 동안 맥주잔 너머 이들, 그러니까 나와 잔을 기울여주던 이들을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쓰는 내내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 그리고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살아가는 힘이란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어서.

▲ 체리주스가 들어간 람빅인 린데만스 크릭. / 우보라 기자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 연재를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무엇이냐는 거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미국 보스턴 비어 컴퍼니가 생산하는 '새뮤얼 애덤스 보스턴 라거(Samuel Adams Boston Lager)다. 보스턴 비어 컴퍼니는 1984년 짐 코흐(Jim Koch)가 설립했다. 새뮤얼 애덤스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맥주 중 가장 대중적이라고 평가받는 알코올 도수 5도의 비엔나 라거. 집안 대대로 맥주 양조를 했던 짐 코흐는 아버지의 방에서 고조할아버지의 맥주 제조 레시피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무엘 아담스를 만들었다. 새뮤얼 애덤스는 출시 당시 페일 라거가 대세였던 미국 맥주 시장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보스턴 비어 컴퍼니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로 성장했다. 2007년에는 보스턴 라거 전용 파인트 잔을 출시하기도 했다.

새뮤얼 애덤스를 입에 머금으면 꽃, 오렌지, 자몽, 캐러멜, 빵 그리고 잘 익은 호박의 향이 조화를 이룬다. 목 넘김은 페일 라거보다 무거우나 에일만큼은 아니다. 잘 로스팅한 몰트와 다양한 홉의 조화 덕분에 달콤한 풍미가 입안 가득 남아 계속 마시게 되는 매력이 있다.

사실 내가 새뮤얼 애덤스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면 맥주깨나 아는 이들은 의아해하는데 난 그 이유를 대중성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밀러, 버드와이저가 국내에서 한창 인기를 끌던 그 옛날에도 새뮤얼 애덤스는 대형마트에서 종종 볼 수 있었을 정도로 흔했으니까. 지금껏 맥주 좀 마셨다니까 비싸거나 희소성 있는 맥주를 좋아할 거라고 기대하지만 난 되레 이 대중성 때문에 새뮤얼 애덤스가 좋다. 새로운 맥주를 마시는 건 분명 기분 좋은 경험이지만 매일 무엇을 마실지 고민하는 건 고문이니까. 맛있는 맥주는 마시고 싶지만 고민은 하고 싶지 않을 때, 맛의 기복도 없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만족감을 주는 새뮤얼 애덤스는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적당히 멋을 낼 수 있으면서 어느 옷에나 부담 없이 걸치기 좋은 겨울 외투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 린데만스 라즈베리(오른쪽)와 블랙커런트. / 우보라 기자

덧붙여 새뮤얼 애덤스는 미국의 독립운동 지도자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 독립운동 도화선이 된 1773년 12월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을 주도했고 독립 후에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냈다. 그러니까 맥주 이름이 우리나라로 치면 '안중근' '윤봉길'인 셈!

◇요즘 좋아하는 맥주는 = 최근 가장 빠져있는 맥주는 벨기에 브뤼셀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람빅(Lambic)이다. 일반적인 맥주는 인공적으로 배양한 효모를 이용하지만 람빅은 대기 중에 떠도는 야생 효모를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보통 맥아 70%에 밀 30%를 배합해 맥아즙을 끓인 후 홉과 함께 최장 3년간 공기 중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자연 발효시킨다. 자연이 만드는 맥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대량생산이 어렵다. 상면 발효(발효 중 액면에 뜨는 성질이 있는 효모에 의해 이루어지는 발효)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에일 맥주로 분류된다. 프랑스 상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만을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듯 벨기에 브뤼셀과 부근 지역에서 야생 효모를 이용해 만든 맥주만을 람빅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사워 에일(Sour ale)이나 와일드 에일(Wild ale)과 다르다.

람빅은 젖산균·브레타노마이세스(Brettanomyces)·페디오코쿠스(Pediococcus) 등 미생물 영향으로 강한 신맛과 쿰쿰한 맛을 가지고 있다. 람빅 원액은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 맥주의 모습과 다르다. 탁하고 거품이 거의 없으며 알코올은 5도 정도다. 맛의 호불호가 심해 벨기에서도 먹는 사람만 먹는 걸로 유명하다. 람빅은 다종다양하다. 과즙이나 설탕, 숙성기간이 서로 다른 람빅을 섞어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 새뮤얼 애덤스(오른쪽)와 린데만스 페슈레제. / 우보라 기자

내가 처음 접한 람빅은 린데만스 크릭(Lindemans Kriek)이었다. 크릭은 람빅 원액에 체리 주스를 첨가한 것을 말하는데 린데만스 크릭은 체리 주스 25%, 설탕을 함유하고 있다. 람빅 특유의 신맛과 풍성한 체리 향의 조화가 일품으로 식전주 또는 디저트와 함께 즐기기 좋다. 이후 람빅에 푹 빠져 같은 회사에서 생산된 사과·블랙커런트(Cassis)·라즈베리(Framboise)부터 괴즈(Gueuze·숙성기간이 다른 람빅을 섞어 만든 맥주)까지 마셔본 결과, 최고는 단연 복숭아였다. 이 맥주의 정확한 명칭은 린데만스 페슈레제(Pecheresse). 페슈레제는 복숭아 주스를 무려 30% 함유하고 있다. 페슈(Peche)는 불어로 복숭아를, 페슈레제(Pecheresse)는 죄인을 뜻하는데 린데만스가 너무 많은 과즙을 함유한 죄책감에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나 어쩠다나. 식사 후 디저트 삼아 안주 없이 가볍게 한 잔 하고 싶을 때, 여성에게 맥주를 추천해야 할 때 이 맥주는 특히 빛을 발할 것이다.

이 밖에도 칸티용(Cantillon)에서 생산된 세인트 길로이즈(Cuvee Saint-Gilloise), 괴즈 클래식(Gueuze Classic)과 스리 폰타이넌(3 Fonteinen)에서 생산된 오드 구즈(Oude Geuze)도 무척 맛있는 람빅이니 참고하시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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