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가정폭력'이나 '가정위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대학교 1학년·고등학교 1학년이 된 딸들을 불러 꼭 함께 보곤 한다. 그건 아마 엄마로서의 세상에 대한 불안과 일에서 나온 경험으로 인생에서 마주칠 위기를 딸들이 극복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마음은 내 일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경상남도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취약·위기가족을 지원하는 일로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자살, 이혼 등 위기 사건을 경험한 가족들이 잘 회복해서 안정된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전문심리상담을 연계하는 사례관리 업무를 8년째 맡고 있다. 흔히 위기를 겪은 당사자 대부분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당신이 아느냐? 안다고 한들 말뿐이지' '아, 피곤하게 뭘 자꾸 물어요' 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내 얘기 좀 들어보소' 하고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끊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여전히 경계하는 그들에게 "밥은 챙겨 먹는지? 잠은 좀 잤는지?" 등 일상 질문들로 도움을 드리겠다는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면 닫혀있는 그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열린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그들에게 오랜 실무 경력을 가진 심리상담 전문가들을 연계해주었고, 신기하게도 그들은 점차 일상을 회복해갔다.

그들이 경험한 상처를 우리가 지원하는 짧은 시간 안에 모두 해결하고 회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탓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 함께 아파해주고 공감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숨구멍을 틔워주는 역할 밖엔 안 되겠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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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에게는 위기상황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엄마로서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정 폭력과 상처들을 같이 이야기하고 예방하거나 도움을 받을 방법들을 알려준다. 이 땅에 위기는 있어도 그 상처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그들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면서 치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가정이 있다면 경상남도건강가정지원센터(055-716-2381)를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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