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사격 고샅고샅] (5) 창원사격장 이전 비사
전국체전 계기로 1982년 마산가포서 정병산 근처 이전
재일거류민단 건립 비용 보태…전자표적 국내 첫 도입

지금은 창원국제사격장이지만 처음에는 경남도민사격장이었다. 마산 가포 육군병원 뒤 예비군훈련장에 있었다.

1982년 전국체전을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곳에는 원래 해병대 사격장이 있었다.

이곳으로 옮기고도 여전히 도민사격장이었는데 1985년경, 윤희윤 창원시장 때 창원종합사격장으로 바뀌었다.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공사비가 없어 고생했는데 당시 이규효 경남도지사 시절 재일거류민단이 모금으로 건립비용을 보태기도 했다.

사격장을 옮길 때 박종규 회장 역할이 컸다. 사실 사격장은 '혐오시설'이다. 소음 때문이고, 사격장에서 총기 오발사고로 사람이 죽는 일도 있고 그렇다. 그런데 당시에야 이 일대가 허허벌판이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도심에 이렇게 가깝게 혐오시설을 짓겠다고 했으니, 요즘 세상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격장 위치도 이번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유치에 도움이 됐다고 본다. 도심에서 한참 벗어난 시골에 사격장이 있다면 아무래도 대회 진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창원대가 먼저 자리 잡았더라면 이곳에 사격장이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격장이 먼저 오고 창원대가 뒤에 와서 공존할 수 있게 됐다.

건설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법적 문제가 있었지만 박 회장 영향력으로 건설부가 나서서 민원도 해결해주고 법적인 부분도 처리해주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원래 사격연맹 규정상 지구 북반구에 있는 사격장은 정북향으로 앉아야 한다. 온종일 아무 때나 사격을 해도 해를 마주 보지 않을 수 있는 방향이 북향이다. 정병산 자락에 정북향으로 사격장 위치를 잡으려니 이곳이 최적지였던 것이다.

몇 차례 증축, 리모델링과 시설 증설 등을 통해 지금의 창원국제사격장이 됐다.

이곳은 정말 터가 좋은 것 같다. 이곳에 오고 아직 총기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국내고 외국이고 웬만한 사격장에서는 총기 사고로 선수나 감독이 숨지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 이곳 터가 좋지 않다면 사고 없는 걸 설명하기 어렵다. 인사사고는 한 번 있었는데, 훈련 중 선수가 연못으로 미끄러져 빠지면서 숨진 적은 있다.

여기 와서 엄청나게 발전을 많이 했다. 퇴촌동 산 28번지인가 그런데 터가 좋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더라. 지형적인 영향도 있고 물도 좋다. 사격장 물을 시민들이 약수로 떠 가서 먹기도 한다.

이번에 시설 보강을 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사격장이 됐지만 그전에도 우리나라 사격장을 선도했다. 국내에서 전자표적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시내에서 가까우니 관광객 주민 접근성도 좋다. 외국에 다녀보면 사격장이 변두리에 있어 관중 접근이 쉽지 않다. 세계에서 창원 따라올 데가 없다. 도쿄 올림픽은 임시 시설이다. 올림픽 끝나면 뜯어버린다. 애틀랜타 올림픽 사격장도 이미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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