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주의 뿌리박힌 우리 정치문화
공론화위, 지방자치사 위대한 출발

집단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웅주의'와 '민주주의'입니다.

영웅주의는 한 사람 또는 소수 영웅이 세상을 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슈퍼맨을 비롯해 해리포터, 어벤저스 등 수없이 많은 영화가 바로 이런 영웅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이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합니다. 영웅주의는 아주 쉽습니다. 영웅에게 세상을 맡겨놓고 만일 영웅이 세상을 구하지 못하면 욕만 하면 되거든요. 그에 반해 민주주의는 정말 어렵습니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정말 귀찮고 피곤하게 온갖 세상일에 신경을 써야 하고, 돈도 안 되는 일을 위해 가끔 촛불집회도 나가야 하고, 무슨 무슨 토론회도 해야 하고, 정치인들 감시도 해야 합니다.

현대에서 영웅주의는 전문가주의로 나타납니다. '전문가가 결정해야 옳은 결정을 내린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정부가 처음으로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두고 공론화 작업을 할 때, 보수언론들은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에게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맡기냐'며 엄청나게 비판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 보수언론을 움직인 건 지금까지 국가 정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했던 핵발전 전문가들이지요.

실제로 우리나라 정책은 대부분 소수 전문가가 만든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이익집단과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오도록 정책을 만듭니다. 이 탓에 국민이 얻는 피해는 막대합니다.

영웅주의는 철학적인 뿌리도 매우 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서양의 거의 모든 학문의 기초를 만든 바로 그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똑똑한 사람이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라는 '철인(哲人) 정치론'을 주장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영웅주의가 학문 곳곳에, 우리나라 법과 제도 곳곳에, 우리 생각 속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치학자인 로버트 앨런 달(Robert Alan Dahl·1915~2014)은 '수호자주의(영웅주의)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창원시 공론화위원회에 대해 많은 기대와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론화 작업을 제대로 한 것이 겨우 작년이고, 지자체에서 시도하는 것은 창원시가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기대와 걱정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공론화 작업을 통해 과연 이 난제들을 풀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걱정을 사실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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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함에도 시민 여러분께 시 공론화위원회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봐주십사 부탁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깊이 뿌리박은 영웅주의 정치 문화에서 겨우 벗어나 보려고 쉽지 않은 가시밭길을 가겠다고 내린 결단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영웅주의가 깊이 뿌리박힌 대한민국의 정치 문화 속에서 대한민국 지방 자치 역사에서 거의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민주주의를 시도해보려는 것입니다. 공론화 작업을 한다고 해서 그 난제들이 자동으로 풀리리라고 저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도 자체가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앞으로도 시민 여러분께서 창원시 공론화위원회를 날카롭게 비판해주시는 것 환영합니다. 다만, 공론화 작업이 우리 정치 역사에서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조금만 헤아려 주시고 공론화에 애정과 함께 비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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