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과 논다 조각을 깬다
만지고 앉고…관객도 그 일부가 되는 작품들
실험정신·존재에 대한 고찰 돋보이는 작품들

'불각((不刻)의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내달 4일 개막하는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 본 전시 무대는 용지공원(실외전)과 성산아트홀(실내전)이다. 국내 유일한 조각비엔날레답게 용지공원에서는 조각품을 볼 수 있다. 국내외 작가 20명(윔 델보예(벨기에), 미르치아 드미트레스쿠(루마니아), 울프강스틸러(독일), 폴 샬레프(미국), 구본주(1967~2003), 김청윤, 오채현, 윤영석, 이이남, 이환권, 임영선, 조숙진, 백인권, 박영선, 안종연, 이철희, 김영호, 장두영, 이유라, 이강석)의 작품 20여 점이 전시된다. 이 중 16점이 비엔날레가 끝난 후 용지공원에 남아 도시의 풍경이 된다.

용지공원을 '유어예 마당'으로 꾸민 윤범모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공자가 '예술에서 노닐다'라고 말한 유어예(遊於藝)를 따온 만큼 시민의 관람을 넘어 참여형 비엔날레로 성장할 수 있는 도전의 장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상상해보자. 유어예 마당에서 어떻게 놀 것인지를.

울프강스틸러'3 Matchmen stick'

◇"올라타고 들어가야 완성된다"

커다란 '아마란스'가 유어예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 가로, 세로 각 12m에 달하는 작품은 안종연 작가가 만든 공공 조형 작품이다. '아마란스'는 특허 받은 LED로 형상화해 빛을 낸다. 작가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라 관심을 받고 있다.

안종연 '아마란스'

관객들은 꽃을 나타내는 작품 이름처럼 꽃동산으로 꾸며진 작품에서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안 작가는 "빛은 생명의 근원이다.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시작하면 창원의 밤을 빛낼 것이다"고 했다.

구본주(1967~2003) 작가의 유작이 창원에 남는다. 21세기를 빛낼 조각가로 촉망받았던 작가는 10여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누구보다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고 치열하게 시대정신을 담으려고 애썼던 작가는 노동자, 농민의 삶을 비추어 자신은 어떠한 미술을 해야 하는지 되물었다.

구본주 '비스킷 나눠 먹기 2'

그의 '비스킷 나눠 먹기 2'는 두 사람이 입을 크게 벌려 마치 과자를 나눠 먹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유어예 마당에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 역할을 한다. 늘 삶과 가까이 있기를 바란 작가의 마음 같다.

조숙진 작가는 '삶의 색채'를 세워 유어예 마당을 더욱더 활발한 놀이 공간으로 만들었다. 원통을 쌓아 올린 작품은 단순해 보이지만, 누군가 오르거나 들어가야만 완성된다. 공간에서 안과 밖의 경계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조숙진 '삶의 색채'

윤영석 작가의 '심장유희'도 기대거나 미끄럼틀처럼 탈 수 있는 작품이다. 창원의 조각가 김종영(1915∼1982) 선생에 대한 기억의 오마주라고 말하는 작가는 조각 예술의 심장을 표현했다. 윤 작가는 "미끄러지고 거닐며 조각 위에서 조각을 생각하길 바란다"고 했다.

윤영석 '심장유희'

◇고급 미술 비틀기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작품의 조형성과 더불어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을 담아내는, 조각의 영역을 확장하는데도 신경을 썼다.

미술품을 숭배만 하는 예술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윤 감독의 의도는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윔 델보예(벨기에) 작가의 '콘크리트 믹서'가 대표적이다. 신개념미술(네오컨셉츄어)의 작가, 악동 예술가, 돼지 문신 작가 등 여러 수식어가 붙는 작가는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예술가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첫 개인전을 열었다.

윔 델보예 '콘크리트 믹서'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로 그의 연작 작품이 창원에 남는다. '콘크리트 믹서'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다. 스테인리스를 하나하나 연결해 화려한 고딕풍 조각으로 완성했다. 그런데 이 고급스러운 작품은 다름 아닌 공사장에서 볼 수 있는 콘크리트 믹서를 형상화했다.

삽에 무늬를 새기고 타이어에 조각을 하는 작가는 심각하게 아름다워진 물건의 기능성과 본래의 의미를 상실시킨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섞이는 지점을 보이며 모순과 비틀기를 반복한다.

유어예 마당에 세워질 작품을 살펴보면 현대인의 얼굴이나 인체를 형상화한 조각이 많다.

미르치아 드미트레스쿠(루마니아) 작가의 '맨', '커플(아담&이브)'은 덜 성숙했고 진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인간의 원래 모습은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르치아 드미트레스쿠'커플'

울프강스틸러(독일) 작가의 '3 Matchmen stick(3 매치맨 스틱)'은 다양하게 읽힌다. 타다 만 성냥개비 위 두상, 다른 생김새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독일 출신 작가지만 미국, 중국 등에서 작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쟁터, 화형, 인종차별, 불장난 등 여러모로 해석할 수 있다.

조형성에서 폴 샬레프(미국) 작가의 'Intention(의도)'도 주목된다.

또 '영웅'이라는 이름의 내건 이환권 작가의 작품에서 왜곡된 신체가 보이고 임영선 작가의 '보어의 오해'에서 해체된 두상 속에서 들리는 소음에 낯섦을 느낄 것이다.

폴 샬레프'In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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