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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미 국립 아카이브(NARA)

'쓰고, 남겼다가, 보여주는 것' 그들의 신념은 확고하다
대통령 직속 미국립문서보관소
80년 역사…90억 장 쌓여 있어
연간 15억 장 이관·6만 명 이용
'누구에게나 열린, 살아있는 곳'
우리나라 관련 저작물 '다수'
한국전쟁 등 희귀 자료도 발굴
'국가 혼 담긴 곳' 인식 배워야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webmaster@idomin.com 2018년 08월 24일 금요일

"이승만은 한국 독립에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늘 행동에 옮기는 참된 애국자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득이 되는 것과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곧 한국처럼 생각한다. … 그는 자신이 한국의 모세인 동시에 예수라고 자임하고 있지만, 자신의 현실적인 정치적 입지가 어렵다는 점을 망각한 적은 거의 없다. (이하 생략)"

이흥환 작가가 쓴 <대통령의 욕조>라는 책에 나오는 1948년 10월 28일, 미 중앙정보국 CIA가 분석한 석 장짜리 문서, '이승만의 성품'이라는 제목의 내용 중 일부다.

242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부기록을 남기는 나라다. 기록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어 많은 기록을 생산, 보관하고 기록의 공개가 곧 기록의 힘이라는 것을 알고 많은 기록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책의 요약으로(이 책이 미국의 기록관리의 전체는 아니지만) 미국의 기록관리시스템을 이해하고 우리의 기록관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간략히 고찰해보고자 한다.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 누리집에서 '한국전쟁 기록'에 관한 부분 갈무리.

◇미 국립문서보관소

미국 국가 아카이브 정식 명칭은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즉 국립 기록물 보존 및 관리청, 미 국립문서보관소 등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내셔널 아카이브(I과 Ⅱ가 있다)는 어느 기관에 속한 하급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 직속이며, 하는 일은 미 연방정부가 공무를 수행하면서 생산한 문서 중 법적 혹은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된 영구문서다. 문서를 관리하는 곳은 내셔널 아카이브뿐만 아니라 대통령 도서관 열세 곳, 연방기록물센터(FRC)가 열일곱 곳이다. 내셔널 아카이브 역사는 80년 정도이며 90억 장 정도를 보관하고 있다. 서고에는 미국의 이야기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에 관한 이야기가 쌓여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매년 15억 장 문서가 이관되고 있고 아카이브 이용자는 평균 6만 명이다.

또한 세계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카이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지켜야 할 작은 규칙만 지키면 신분증만 가지고 입장이 가능하고 저작권도 없으며 복사도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한다.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이흥환 씨가 쓴 <대통령의 욕조> 표지.

◇'기록물 묘지'라는 인식을 넘어

아카이브 건물은 전쟁의 공습에도 끄떡없을 '방탄' 건물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연방정부의 부처 직원들이 문서더미를 들고 와 이 방탄 건물에 기록물을 맡겼고 언론은 이때 아카이브를 군 기지라는 뜻의 포트 아카이브(Fort Archives)라고 표현했다. 또한 아카이브는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의 상륙작전을 위해 전략지점의 날씨 자료가 필요할 때, 풍부한 기후 및 지리 정보를 제공하였고 이 일을 계기로 아카이브가 '죽은 문서'를 보관하는 '기록물 묘지'라는 인식에서 '살아있는 곳' '살아있어야 하는 곳'으로 재평가되기도 했다.

◇한국 관련 문서는

미국 아카이브(NARA)에 한국문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주로 국내에서는 자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시기와 분야의 문서들에 집중되어, 한국 현대사의 저작물 중 많은 내용이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군사, 외교, 정치뿐만 아니라 1960년대 임신가능한 남한의 여성인구 현황, 피임기구 보급상황, '내 자식 먹일 쌀, 쥐새끼가 다 먹는다'는 쥐잡기 포스터 등 일상의 내용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남한 진주 12일째, 하지가 분석한 한국 상황', '지리산 빨치산 한 자릿수까지 파악', '주한 미 대사관, 독도 분쟁에 끼워들면 안 된다' 등 다양한 한국 이야기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김일성 위원장 전화번호 2268', '극비 중국관계 자료집', '극비 공격 명령서' 등 노획한 북한 문서도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2년간 조사해 미 국립 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포로로 잡혀있던 일본군 위안부' 18초짜리 흑백영상에 관해 설명하는 장면. /연합뉴스

◇'한국인의 기본특성'?

이 중 미 군사정보국이 분석한 '한국인의 기본특성' 내용을 살펴보자.

1942년 5월 15일에 작성된 이 문서는 미국인이 대일 선전 포고 직후에 한국인을 무장시켜 병력으로 조직화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질) 한국인 대다수는 무엇이든 쉽게 익히며, 용감하고 자신감이 있고, 성실하고 수양이 잘되어 있다. 동시에 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격이 급하고, 자기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려다가 사소한 술책이나 음모에 쉽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들은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수백 년에 걸친 실정과 30년에 걸친 일본의 압제 때문에 더욱더 악화되었음이 틀림없다. (참고 견디는 용기) 한국인들은 정신적인 면이나 신체적인 면에서 극단적으로 취약함과 강인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하찮은 난관에 직면했을 때,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면 한국인들은 쉽게 무력해지고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목숨을 건 문제에 직면했거나, 애국심이나 신앙 때문에 가혹한 육체적 시련을 당할 때에는 투사 같은 용기를 발휘한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가혹한 고문 속에서도 동지의 이름이나 계획을 누설하지 않은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한국인의 기록관리 태도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미국의 내셔널 아카이브를 한국인들은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한국인의 기록관리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1970년 비밀로 분류된 일본, 독일, 북한 등 노획 문서가 비밀 해제되자 많은 나라에서 이 문서에 대한 수집사업을 시작했다. 독일은 25명 정도의 아키비스트(기록연구사)를 투입해 2년 동안 노획 문서의 2100만 장을 독일로 가져갔고 일본은 지금까지 30년 이상, 기록물을 목록화하고 수집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가 미군이 노획한 기록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미군이 노획한 문서) (한국인) 이용자들은 세 가지 형태를 보인다. 첫째, 일부 한국 학자들 특히 한국 정부 관리들은 자신만이 이 자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수집한 후 다른 이들은 자료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둘째, 정치적 선정주의를 노린 일부 언론인들은 민감한 시기에 이 자료를 공개한다. 예를 들면 '북괴 남침 관련 비밀문서 대량으로 쏟아져'(동아일보·1978년 6월 24일)라는 장문의 기사가 그런 경우다."

세종시 대통령기록관 모습. /연합뉴스

◇"아카이브는 우리 혼이 담긴 곳"

나는 이 책을 통해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 누구에게나 업무의 효율성을 의심받는 우리나라의 기록관리를 생각했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대가로 인간의 가치조차 효율을 생각하는 부작용 때문에, 그동안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기록관리는 즉각적인 효과가 없다면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찬란한 기록유산을 가진 우리나라는, 지난 격동의 시간 동안 단기적이고 편파적인 시각으로 기록을 관리해 많은 역사적인 기억들이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졌는지 모른다.

미국의 기록관리 역사는 짧지만 그들의 기록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 '쓰고, 남겼다가, 보여주는 것' 그들은 이 원칙으로 지금까지 긴 호흡으로 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 건물 주춧돌을 올려놓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1933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건물은 우리 역사의 신전이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며, 미국의 혼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록을 그들의 혼이라고 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의 혼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세계에서 잠자는 우리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있는지, 현재 우리가 생산하는 기록은 무엇이며 수집해야 할 기록은 어떤 것이며, 이 기록은 시민에게 '적극적으로 공개'되고 있는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미국처럼 당당하게 대답할 그 무엇이 있는가?

지난 5월 문을 연 경남의 아카이브(경상남도기록원) 개원식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이념적, 정파적 주장은 널려 있는 반면, 사실에 근거한 논쟁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의 창고인 기록원은 국가 내 만연한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우리 지역 사학자(유장근 경남대 명예교수)의 말을 생각해 볼 일이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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