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사격 고샅고샅] (3) 박종규·재규 그리고 라냐 회장
대학팀 창단·사격장 이전 큰 힘
세 사람 인연, 대회 유치에 도움

경남 사격을 얘기할 때 박종규 전 대한사격연맹 회장과 박재규 경남대 총장 형제를 빼놓을 수 없다.

박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낸 이로 사격 사랑이 남달랐다. 1970년대 당시에는 현재의 창원사격장이 아니라 마산 가포 예비군훈련장 옆에 사격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기관대항 사격대회도 열리고 예비군 사격대회도 열리는 등 경남에 사격 붐이 일었다. 박 회장이 뒤에서 힘을 써주면서 현재의 창원사격장 자리로 옮길 수도 있었다.

1979년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 세계사격연맹 회장을 영접하는 박종규(오른쪽) 대한사격연맹 회장. /대한사격연맹

박 회장이 한마학원 이사장에 취임하고 사격에 많은 지원을 해줬다. 경남대에 사격부가 창단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박재규 총장은 잠시 경남사격연맹 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한마학원이 설립되기 전 경남대 학원장 자격으로 맡았는데 오래 하지는 않았다. 김정섭 중앙정보부 경남분실장이 경남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70년대였다. 당시는 경남 사격이 권력의 중심이었다.

당시 경남연맹 회장은 거제군수가, 레슬링협회장은 창원시장이 맡아 유지되던 중 1985년 마산사격장이 지금의 창원사격장으로 이전하면서 창원시장과 거제군수가 회장직을 맞교환했고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조현진 감독

박종규 회장은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 세계사격연맹 회장과도 매우 돈독한 사이였다. 1968년 라냐 회장이 주선해 박재규 총장의 약혼식을 멕시코에서 치를 정도였다.

창원에서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린 것도 라냐 회장과 박재규 총장이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창원은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어 불리한 처지였다. 하지만 라냐 회장이 박종규 회장의 고향 창원에서 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것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줬다. 원래는 크로아티아와 창원이 대회 유치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는데 막판에 크로아티아가 돌연 유치신청을 철회했다. 찬반투표로 간단하게 창원 개최가 결정된 것이다.

라냐 회장과 박종규 회장, 박재규 총장의 유대가 없었다면 유치 자체가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박종규 회장 형제와 라냐 회장의 인연으로 이제 창원은 세계 사격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춘 사격장을 갖게 됐고, 대한민국 사격의 메카로 확고한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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