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서 사흘 동안 해후
손 마주 잡고 눈시울 적셔
가족끼리 첫 '객실 중식'
마지막 날엔 이별의 건배
내일부터 2차 상봉 진행

◇이별 앞 눈물바다

"오빠, 울지마. 울면 안 돼…"

81세 여동생 순옥 씨의 말에도 88세 오빠 김병오 씨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3시간의 작별상봉이 끝나면 여동생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침착하려고 애쓰던 여동생도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10분 넘게 남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이고'라며 탄식만 내뱉었다.

22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작별상봉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눈물부터 쏟았다.

21일 오전 외금강호텔에서 열린 개별상봉을 위해 북측 가족들이 도착해 호텔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측 손자 리 철(61) 씨는 작별상봉장에 나타난 권석(93) 할머니를 보자마자 손을 잡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도 손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동안 손을 어루만져줬다. 할머니와 동행한 남측 아들이 "철아, 울지마"라고 달래면서도 본인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북측 조카들과 만난 송영부(92) 할머니도 북측 가족들이 "간밤에 안녕하셨느냐"라고 인사하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측에서 함께 온 가족들은 할머니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랬다.

김춘식(80) 씨와 북측 두 여동생은 작별상봉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김 씨는 "오래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어"라면서 여동생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하기도 했다.

배순희(82) 씨는 북측 언니와 여동생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지금은 100세 시대니까 오래 살고, 서로 다시 만나자"라는 배씨의 말에 언니도 "다시 만나자"라고 재회를 기약했다.

작별상봉에서는 당부의 말도 많았다. 한신자(99) 할머니는 북측 두 딸을 양옆에 앉히고 "찹쌀 같은 것이 영양이 좋으니 그런 걸 잘 먹어야 한다", "○○에는 꼭 가봐야 한다, 알겠지"라고 당부했고 딸들은 어머니 곁에 다가앉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날인 21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최동규(84) 할아버지와 북측 조카 박성철(40) 씨가 노래 '고향의 봄'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건강을 당부하는 가족들도 많았다. 함성찬(93) 할아버지는 북측 동생 함동찬(79)씨의 손을 꼭 잡고 "건강이 최고다"라고 힘줘 말했다.

신재천(92) 할아버지는 북측 동생 금순 씨에게 "서로 왕래하고 그러면 우리집에 데려가서 먹이고 살도 찌우고 하고 싶은데…"라며 슬퍼했다. 경기 김포에 사는 신 할아버지는 개성에 산다는 북측 동생에게 "차 가지고 가면 40분이면 가"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금섬(92) 할머니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북측 아들 상철(71) 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작별상봉이라 그런지 상봉 시작 전 연회장에 미리 나와 기다리는 북측 가족들은 애가 타는 모습이었다.

전날 건강 문제로 단체상봉에 참여하지 못한 김달인(92) 할아버지의 북측 여동생과 조카는 현장 관계자들에게 김 할아버지가 작별상봉에 나오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 혹시나 김 할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 아닌지 하는 걱정에서였다. 김 할아버지가 도착하자 여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오빠를 자기 옆에 앉혔다.

작별상봉은 점심을 포함해 오후 1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됐다. 당초 2시간이었다가 남측 제의를 북측이 수용해 3시간으로 늘었다.

남측 가족들은 작별상봉을 마친 뒤 북측 가족을 뒤로하고 오후 1시 30분 금강산을 떠나 귀환했다.

남측의 함성찬(93) 할아버지가 북측의 동생 함동찬(79)에게 과자를 먹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가족 뒤로하고 슬픈 귀환

언제 다시 만나나.

남측 이산가족 89명과 동반가족 등 197명은 금강산에서 열린 2박3일 간의 상봉행사를 마친 뒤 65년 만에 만난 그리운 가족을 뒤로하고 22일 오후 1시 28분께 남측으로 출발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전 3시간 동안 작별상봉에 이어 점심을 함께하는 것으로 부족하기만 한 만남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방북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감격적인 단체상봉으로 처음 만났고 환영만찬, 이틀째 개별상봉과 객실 중식, 단체상봉, 이날 작별상봉과 점심 등 모두 12시간 동안 해후했다.

가족끼리 도시락으로 따로 식사한 객실 중식은 과거 이산가족 행사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이번 전까지는 다른 가족과 공동식사만 마련됐는데, 가족들끼리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붓한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도록 이번에 바뀌었다.

북측 이산가족 83명이 남쪽의 가족들과 만나는 2차 상봉은 24∼26일 금강산에서 1차와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22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김병오(88) 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동생 김순옥(81) 할머니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 식사…오징어·낙지 논쟁에 웃음꽃도

이산가족들은 22일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에 이어 점심을 함께하며 아쉬운 이별을 준비했다.

예정보다 30분 이른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공동점심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다.

한신자(99) 할머니의 남북 네 자매인 김경복(南·69), 김경식(南·60), 김경실(北·72), 김경영(北·71) 씨는 식사가 나오자 서로 크림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며 챙기는 모습이었다.

북측 딸이 젓가락으로 빵을 잘 집지 못하자 한신자 할머니는 옆에 놓인 포크를 집어주며 "이거로 먹어라"고 내밀었다.

조도재(75) 씨는 북측 조카 백광훈(62) 씨가 나물 반찬을 앞에 놓아주자 "아니야. 너 먹어∼"라고 말하는 등 사이좋게 식사를 했다.

상봉장 곳곳에서는 남북의 가족들이 맥주로 '이별의 건배'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점심 메뉴로 나온 '오징어 튀김'을 놓고는 작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진수(87) 할아버지는 북측 조카며느리가 오징어 튀김 하나를 집어주며 "낙지예요"라고 말하자, "오징어지"라고 가볍게 반박했다.

그래도 조카며느리는 "에? 낙지예요"라고 수긍하지 않았고, 김진수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가로로 긴 모양으로 만들면서 "낙지는 이렇게 긴 거지"라고 했다.

그러자 조카며느리는 "아아. 거기서는 낙지가 오징어군요"라며 웃음꽃이 피어났다.

북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로, 낙지를 오징어로 부른다. 남북한 간 명칭이 정반대인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공동점심을 끝으로 2박 3일 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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