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를 중심으로 도는 위성들"
지역 중견시인 문학연구모임
잔잔하지만 울림 있는 작품

그 무섭던 더위도 결국은 흘러가는구나 싶은 나날이다. 기어이 계절은 또 바뀌려나 보다. 도저한 자연 앞에 나약한 인간으로서 숙연해진다. 이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안해진다.

시문학연구회 하로동선 동인의 세 번째 시집 <사랑은 종종 뒤에 있다>는 이렇게 뜨거운 한여름을 막 지나 어느 새, 싶은 순간에 불어오는 '늦여름 초가을 바람' 같다. 나름 삶의 이력이 적지 않은 시인들은 이제 편안하게 풍화되어 부드럽다. 그래서 시들이 잔잔하고 정겹고 솔직하다.

"요즘 사람들 책 보내줘도 읽지 않고 버린답니다/ 아무 책이나 받는 것도 귀찮다는 것이지요/ 겉만 보고 뜯지도 않고 봉투째 쌓아두기도 한다네요/ 그렇게 쌓인 책은 야식 먹을 때 라면 받침대나/ 바퀴벌레 잡는 도구로 사용하거나 장롱 모서리에 끼여 평생을 썩기도 한답니다 (중략) 요즘은 둘째만 낳아도 큰돈 준다는데 네 번째 나온 시집 겉봉투를 풀질하다 말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를 아무 데나 시집 보내면 골병이 들겠구나"(김시탁 '시집보내지 않겠습니다' 중에서)

"내게 부족한 것은 딱 백만 원/ 이백만 원도 아니고 삼백만 원도 아니고/ 딱 백만 원, 그저 딱 백만 원/ 없는 듯, 있는 듯 딱 백만 원 (중략) 친구들 술도 좀 사주고, 나도/ 어디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보고/ 남 따라 장에 가듯 살아보는 딱 백만 원"(성선경 '적막 상점4' 중에서)

하로동선은 지역 중견 시인들이 모여 시를 나누는 모임이다. 문단이나 문협 같은 격식을 벗어나 그저 시 자체를 탐구하자는 취지다. 그런 만큼 소탈하고, 또 그런 만큼 진지하다.

이번 시집에는 김시탁, 김일태, 민창홍, 성선경, 이달균, 이서린, 이월춘 시인이 참여했다.

시집 끝에 실린 이달균 시인의 해설 중 마지막 문단을 보자.

"우리는 모두 지천명에서 이순을 지나고 있다. 호주머니를 털어 책을 내는 우릴 향해 '아직도?'라며 껄껄 웃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버리지 못하고 떠메고 다니는 운명의 남루 같은 시인 것을. 그렇다. 우리는 그 시를 중심으로 도는 위성이다. 이름 있는 별처럼 누군가의 창을 밝히는 별은 못되지만 아직은 그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도는 이름이 없는 별이다. 부질없이 하릴없이, 그러나 또한 기꺼이."

그리고 이 문단은 다시, 글이 시작되는 제일 첫 문장으로 돌아와야 비로소 완성된다.

"삶은 계속된다. 2018년의 하로동선도 그렇게 흘러간다."

도서출판 황금알, 141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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