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지음
점점 메말라만 가는 일터
경애·상수 두 주인공처럼
위로·존중의 감정 품으면
팍팍한 일상 버틸 힘이 돼

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같이 일하는 어린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친구는 며칠을 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쁘게 일하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말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업무적인 일 이외에 어떤 위로를 건넬 만큼의 쉼과 관계가 허락되지 않는 곳 같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감정이 점점 말라감을 느낀다. 좀더 빠르게 더 많은 햄버거를 만드는, 효율성을 최고가치로 여기는 이 기업에서 나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까? 나도 그들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근무시간 내내 무표정으로 일만 하다 가는 것 같다. 아주 가끔 나를 궁금해하거나, 나를 보고 웃거나, 조금이라도 친근하게 나를 부르는 어린 친구들을 볼 때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진다.

◇'상수' 같은 친구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거의 없어진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주인공 상수는 슬픈 영화를 보면 울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문학적인 말들을 건네고, SNS에서 여성들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기도 하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이런 남자는 우리 사회에 드물다. 이런 사람이 현실에도 있을까 주위에서 찾아봤지만 한 명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고등학교 시절까지 내려가서야 상수 같은 친구 한 명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손편지를 쓰기도 했고, 좋은 음악을 추천하기도 했다. 밝은 날씨에 창원시청 광장을 걷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 감정을 에세이로 적기도 하였다. 그 친구는 항상 나에게 친절했지만 내가 그 친구를 밀어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여성적인 그 친구의 감성적인 표현들이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도 그 친구는 이상하게 잊히지 않았고 그때 내 행동들을 많이 후회했다. 이런 친구는 마음이 여리고 냉정한 사회에서 상처도 잘 받을 것 같아서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경애' 같은 동료 직원

여주인공 경애는 겉으로는 차가운 듯 행동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다. 정의롭지만 융통성은 없었다. 이런 여성들은 주위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조선소에서 경비로 일했을 때 안내원으로 일하던 한 여성이 생각났다. 그녀는 경애처럼 허가되지 않은 차량이 사무실 앞에 주차하면 상대가 누구든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런 모습을 윗사람들은 싫어했다.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그녀가 또박또박 내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나는 단순히 사무적인 태도를 벗어난 그녀가 싫다기보다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당시에 나는 정규직원들의 차가운 시선과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자존감이 많이 내려가 있었다. 이 세상에 계급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밸런타인 데이에 나에게 초콜릿을 챙겨준 유일한 여직원이었다. 내가 야근할 때 추울까 봐 자기 난로를 빌려 쓰라고 했다. 한가한 시간에 인터넷 쇼핑을 즐겨 했던 그녀는 나를 불러 어떤 옷이 더 예쁜지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녀의 그 사소한 말 한마디는 나를 치료해주었고, 내가 조선소에서 버틸 힘이 되었다.

이 책에서 상수와 경애 같은 감성적인 사람들과 자본주의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계속해서 싸운다. 경애는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술집에 갔다가 불이 나서 자신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때 그 술집 사장은 술값을 받기 위해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 상수의 아버지는 상수를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해 상수에게 공부를 억지로 시킨다. 이런 사건들은 주인공들이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큰 상처를 주었다.

경애와 상수는 나중에 같은 회사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난다. 그 팀은 영업실적이 좋지 않고 회사 말도 안 듣는 골치 아픈 팀이 된다. 그 둘은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이용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세력에 밀려 베트남으로 파견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끝까지 불의와 싸우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간다. 결국엔 그 둘의 어떤 마음이 베트남 현지의 사람들에게 통했고 영업도 잘 풀리고, 회사 비리를 바로잡기도 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거래되는 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숨겨진 '감정'이라고 자신의 저서 <감정 자본주의>를 통해 주장한다.

나는 이 소설 해피엔딩이 단순히 이상적 바람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앞으로는 정서적 동기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 /시민기자 황원식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