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에 살다 보니 책 읽을 곳이 없었다. 유일하게 마을회관에는 책이 있었다. 기증하거나 낡은 책들이 뿌연 먼지에 꽂혀 좁은 공간을 채웠다. 가끔 친구와 시간을 보낸 공간이 기억 속 저편에 남아있다.

위인들의 전집류와 어렵고 딱딱한 역사와 철학, 꼬불꼬불한 영어로 쓰인 제목들이 알 수 없이 높고 넓어 읽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고 단단한 것들의 문장들은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가는 데 있어 생각의 도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옛 철학자나 수학자, 역사학자를 만나니 힘겨웠던 일상들이 가끔 고전에 머문 듯하다.

그때는 도서관보다 동네서점이 꽤 많았다. 서점은 문제집이나 선생님이 추천한 책을 사는 곳으로 조금은 익숙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고 이성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책방 주인은 살아가는 이야기, 인생 선배로서의 경험담과 조언도 가끔 들려주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춰버린 동네서점이 새로운 변모를 꾀하고 있어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형서점과 달리 동네책방은 공간의 콘셉트와 주인장의 취향을 느낄 수 있고 독특한 이야기에 빠질 수 있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래서 요즘 책방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끌림은 그 속에 잠재해 있는 공간과 새로운 세계를 담은 책, 그중에서 책방 주인의 삶이 곁들여진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라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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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은 단순히 책을 팔고 사는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마을의 문화를 공유한다. 독립출판물을 팔기도 하고 술과 커피, 책이 어우러지는 책방도 있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그 멋에 빼앗기는 책방,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으로 문을 연 그림책방, 헌책만을 위한 곳과 게스트하우스를 활용한 책방 등 동네 책방은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며 소소한 행복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곳이 책방이다. 과거의 머물렀던 책방이 아니라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삶의 공간이자 문화가 태동하는 공간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도 불 밝힌 책방을 찾는 사람들로 넘쳐 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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