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수익 공유하자는 주장
문인에 대한 존중 이해 선행되어야

지난 19일 열린 박노정 시인(7월 4일 타계)의 '시비 제막식'에 참석한 후 마산 오동동 복국집에 앉았다. "최고만이 미덕인 세상에서 / 떠돌이 백수건달로 / 세상은 견뎌 볼만하다고 / 그럭저럭 살아 볼 만하다고 / 성공만이 미덕인 세상에서 / 끝도 시작도 없이 / 가랑잎처럼 정처 없이 / 다만 가물거리는 것들과 함께."(박노정, <자화상>)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잠든 박노정 선생의 '수목장' 앞 시비에 새겨진 시가 따라왔다. 참 아프고 외롭게 사셨다. 갓 예순을 넘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진 창원의 김혜연 시인 또한 그랬다. 평생을 불의와 싸우며 산 청빈의 삶 그대로 무덤 또한 남기지 않은 박노정 선생의 시 <자화상>처럼, 너무 아파서 아프지 않은 척 살았다. 그래서 등단 20년 만의 첫 시집을 유작으로 남겼을 것이다. 김혜연 시인보다 다섯 달을 먼저 떠난 박서영 시인도 그랬다. 내가 알고 내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시인들은 다 그랬다. 죽어서도 젊어서 더 아프고 슬펐다. 그들이 말없이 떠난 밤마다 모르는 얼굴이 나를 버리는 꿈을 꿨다. 그런 까닭일 것이다. 복국집에 앉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살아있는 자들의 입. 너무 많이 아프고 너무 외로워서 아픈 척도 외로운 척도 하지 못한 시인들과는 달리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외로워서 비명을 질러대는 잘난 입들. 입이 독이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박노정 선생의 '시비 제막식'이 있기 전날 밤, 읽다가 집어던진 책에 관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책 속에 숨은 입에 관한 이야기다. '문학적 공유경제'를 꿈꾸자고 했다. 한국작가회의가 발행하는 <내일을 여는 작가> 2018년 하반기호 기고문을 통해 문학평론가 한만수 동국대 교수가 꺼낸 말이다. "베스트셀러의 인세가 오로지 해당 작가에게만 독점되는 것은 정당하기만 한가?" 몸에 좋은 독처럼 일단 말은 그럴듯해 보인다. 문학담당 기자가 그냥 넘길 리가 없다. '도발적인' 질문이라며 평론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맞장구를 친다. 과연 '도발적인'이란 수식이 붙어도 될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우리 문학계에서 나름 최고의 '위세'(?)를 가진 문학평론가이자 교수, 그리고 중앙지 문학담당 기자의 말과 글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제아무리 그럴듯한 위세와 힘을 가졌더라도 좀 인간적으로 살자. '매문'(賣文)이 어쩌니 '탕진'의 흔적이 어쩌니, 하는 서론은 접어두고 결론부터 말하면 결국 '돈 이야기'다. 이를테면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인세를 '공유'하자는 것. 특히 문단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한 터에 베스트셀러의 탄생에 투입된 '공유몫'은 가난한 문인들에게 돌아가는 게 타당하다는 것. 

현실적 대안으로 주요 문학 출판사들이, 역량은 있지만 상업성은 떨어지는 신진 작가들에게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지원을 하는 것. 한 교수는 이 같은 기고문을 쓴 이유가 문학과 출판 역시 자본주의 상업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문학은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겠나 하는 판단에서라고 했다. 나처럼 가난한 시인 입장에서 보면 귀가 솔깃한 그야말로 비단결 같은 말이 아닌가. "소수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 돈과 명예가 쏠리는 한편에서는 문학에 대한 열정 하나로 가난에 맞서는 작가들의 존재가 엄연하다. 그들이 좌절해서 뜻을 꺾거나 스러지지 않도록, 문인 기본소득과 문학적 공유경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결론 또한 과연 멋진 입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게 과연 말일까? 글일까? 돈일까? 아님 독일까? 문인 기본소득이니, 문학적 공유경제 같은 소리하지 말고, 문학에 대한, 문인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과 존중부터 좀 생각하자. 그러니까 이런 기고문은 돈도 아니고, 독도 아니고 똥이다. 이건 너무 아프고 외롭게 살다 막 떠난 시인들을 대신해 하는 말이다. 어떤 울음은 죽어서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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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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