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명 독립영화 감독작
풍자 숨은 '블랙 코미디'
판타지스러운 선곡 인상적
작곡가 하차투리안 작품
스파르타쿠스·가이느 등 민속 선율 서구화해 유명

판타지 코미디 멜로 비즈니스영화라고 해야 하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코엔 형제 중 형인 조엘 코엔은 1950년대 말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신비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시골 마을에서 막 상경한 노빌(팀 로빈스)은 대도시 뉴욕에서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연히 허드서커사의 구인광고를 본 노빌은 그곳으로 향하고 이때 허드서커 빌딩의 44층에서는 이사회가 한창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보고를 받던 중 회장 허드서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창문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지고 이를 지켜 보던 머스버그 이사(폴 뉴먼)는 그 자리에 있던 이사들과 함께 자격이 현저히 떨어지는 대리인을 사장으로 임명해 주가를 떨어뜨린 후 주식을 거둬들여 경영권을 차지할 계략을 세운다. 한편 지하 우편실에 취직이 된 노빌은 모두가 두려워하고 내용 또한 알 수 없는 블루 레터(파란 편지)를 머스버그 이사에게 전달할 임무를 맡는다. 모든 일에 실수 연발인 노빌을 본 머스버그는 그를 적임자로 여기고 사장자리에 앉힌다. 한편 뭔가 수상하다고 여긴 퓰리처상 수상 경력의 여기자 에이미는 신분을 속이고 노빌의 비서가 되어 결국 은밀한 이사회의 계략마저 파악하고 동시에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를 사랑하게 된다. 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노빌은 주주들의 원성을 사게 되고 뭔가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절실한 가운데 그의 주머니에는 늘 가지고 다니는 아이디어 상품의 설계도가 있다. 하지만 낡은 종이에는 그저 완벽한 원 하나가 그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위한 상품이며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이사회에 소개하게 되고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여긴 머스버그는 그 아이디어 상품의 생산을 허락한다.

▲ 주인공 노빌의 아이디어 상품 설계도에 그려져 있는 원.

노빌이 설계하고 만들어 낸 작품은 바로 '훌라후프'. 이사회의 기대와 달리 훌라후프는 대성공을 거두고 회사의 주가는 사상최고를 기록한다. 성공에 흠뻑 빠져 버린 주인공은 안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이전의 노빌로 돌아오라는 에이미의 충고마저도 무시한다. 또한 친구처럼 지내던 엘리베이터맨이 아이디어로 들고 온 동그란 원 모양의 '구부러지는 빨대' 설계도를 보고는 창조적이지 못하며 실패할 것이라고 독설을 날리고 그를 파면하기까지 한다. 머스버그는 노빌을 파멸시킬 새로운 계략을 꾸미고 결국 그는 파멸을 향해 내달린다. 과연 그는 머스버그와 이사회의 계략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훌라후프

1958년을 떠나 보내고 1959년을 맞이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가운데 누군가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 때 아름답게 흘러나오는 선율이 있으니 바로 영화 전편을 아우르며 사용되는데 구소련 작곡가 '하차투리안'의 발레 <스파르타쿠스> 중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아내 프리지아를 위한 아다지오'이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작곡가는 늦은 나이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자신의 고향인 아르메니아의 민속 선율을 서구화된 작곡기법에 녹여낸 것으로 유명하다. '하차투리안'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와 더불어 20세기 구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표작으로는 '바이올린협주곡'과 발레곡 '스파르타쿠스'와 '가이느'가 있다. 발레곡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의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과 그의 죽음을 내용으로 하는 발레를 위해 작곡된 곡으로 반란군과 로마군의 군무로 유명하다. 이 중 영화에 사용된 아다지오(아주 느리게)는 노예로 팔려가는 아내 프리지아와의 2인무를 위한 사랑스러운 음악으로 그 선율이 아름다워 한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현실적인 듯 신비로운 영화의 느낌을 한층 돋우어 주는 선곡이라 하겠다.

멋지게 훌라후프 실력을 뽐내는 소년.

동그란 원 하나만 달랑 그려진 설계도로 성공을 확신하는 노빌, 훌라후프의 성공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머스버그는 그의 계획을 승인하고 생산에 돌입한다. 그리고 전국에 물건이 전시되나 도무지 팔리지 않는다. 상점의 주인들은 훌라후프를 길에 내다 버리고 정처 없이 굴러가던 훌라후프 하나가 어느 소년의 앞에 멈춰 선다. 멋지게 훌라후프 실력을 뽐내는 소년,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상점으로 내달리고 훌라후프는 미 전역을 휩쓰는 히트상품이 된다. 이 모든 장면을 관통하며 멋진 편곡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은 바로 '하차투리안'의 또 하나의 명 발레곡 <가이느> 중 '칼의 춤'이다. 절묘하고도 빠르게 전개되는 영화적 장면에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음악적 전개로 노빌의 아이디어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숨죽여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적 효과를 위한 클래식 명곡의 사용에 있어 모범이라 할 수 있겠으며 이 곡은 아마도 대중에게 알려진 '하차투리안'의 작품 중 가장 친숙한 멜로디일 것이다.

머스버그의 계략으로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빌에게 천사가 되어 찾아온 허드서커는 자기가 작성한 유언장, 블루 레터를 읽어보라고 한다. 이 유언장으로 인하여 모든 상황이 역전되어 머스버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노빌은 회사의 진짜 주인이 된다. 에이미와의 사랑 또한 얻게 되니 완벽한 해피엔딩, 이때에도 앞서 언급한 '하차투리안'의 발레 <스파르타쿠스'>중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아내 프리지아를 위한 아다지오'가 흐른다.

◇원 모양 발명품

영화의 중간 중간 짧은 장면들을 통하여 깜짝 선물 같은 클래식 선율들을 만날 수 있기에 소개를 할까 한다.

이사회 간부들이 모인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에서 우아한 왈츠가 흐른다. 크리스마스이니 당연히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이 쓰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밖에 '백조의 호수' 중 왈츠가 흐른다.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곡 중 하나인 '백조의 호수'는 모음곡 중 '정경'으로 인하여 유명하나 포함되어 있는 왈츠 또한 우아함이 넘치는 명곡이니 찾아서 들어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훌라후프의 대성공으로 호사를 누리는 노빌, 그는 사장실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연주자들은 그만을 위한 연주가 한창이다. 변해버린 그에게 한바탕 퍼붓기 위하여 들어오는 에이미, 이때 악단이 연주하고 있는 곡이 이탈리아 작곡가 보케리니의 유명한 미뉴에트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훌라후프의 대성공으로 호사를 누리는 노빌.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은 현실적인 배경에 한번씩 등장하는 뜬금없는 판타지적 요소로 인해 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나 할까. 전문가들 사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영화가 선사하는 아름다운 장면과 색다른 배경만으로도 충분히 추천할만한 영화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영화에서는 3번의 다른 아이디어 상품에 대한 설계도가 등장한다. 하지만 설계도는 모두 같은 모양, 완벽하게 둥근 원이다. 1번째는 훌라후프였으며 2번째 엘리베이터맨이 보여준 원은 구부러지는 빨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이사회에서 발표하는 아이디어 상품은 바로 원반이다. 나에게 있어 이 설계도 모양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곤 너무나도 쉽게 그 해답을 찾았다. 그 발명품은 오늘도 나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원 모양의 발명품은 무엇인가?

/시민기자 심광도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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