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최초의 월급은 4년 전에 받은 과외비였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늘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지금까지 급여는 수십 번 받아본 셈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진정한 의미의 '첫 월급'이란, 바로 며칠 전에 통장으로 들어온 급여다. 얼마 전 입사한 첫 직장에서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더니 나에게도 첫 월급이 들어온 것이다.

퇴근하자마자 현금지급기로 달려갔다. 수년 전에 어머니가 '누구네 딸은 첫 월급 절반을 부모님 용돈으로 줬다더라' 하셨던 때부터 줄곧 생각해온 일을 실행했다. 부모님 용돈을 찾으려다 백만 원 단위 통장 잔액을 보니 문득, 큰돈이 생겨 기쁜 마음보다도 이 많은 돈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다.

취업이라는 중대사에 가려져 미처 생각 못 했던 문제였다. 어른의 세계로 가는 장막을 또 하나 벗겨내고 들어선 기분이었다.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관문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막상 대학 생활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몰라 헤맸던 새내기 시절이 생각났다.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두드리기만 반복한 결과였다.

이번엔 취업해냈는데 나는 인생을 꾸려나가기 위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생활비 계산법도, 적절한 저축도 잘 모르는 직장인이 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동안 대학 동기들과 취업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했지만, 단 한 번도 그 이후에 관해 대화한 적은 없다.

오랜 취업준비 기간을 거쳐 연봉이 높은 중견기업에 취업한 지인은 '취뽀(취업 뽀개기)'에 성공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줄곧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연봉이 높은 기업에 취업하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업무나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게 화근이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이 1년 6개월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 사실만 보아도 비단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청년들이 수없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청년이 취업에 대한 부담 때문에 무작정 취업에 달려들어 막상 그 이후에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대학, 취업, 연애, 결혼, 출산과 같은 대표적인 역할기대가 청년들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다. 가족들이나 지인들, 미디어가 던져주는 역할기대에 청년들의 눈이 멀어선 안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개인이 사회 안에서 기대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려면 정부는 그들이 사회 안에서의 역할수행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조화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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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봉투를 건네받은 부모님은 이제 다 키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할머니도 나에게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여전히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도 빠듯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나는 이제 '누구네 딸이 주었다는 용돈' 같은, 타인이 만들어둔 기준선을 넘어서려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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