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경남운동본부 "정조 운운한 재판부 경악스러워"
여성계·정치권, 비동의간음죄 입법 등 법 개정 목소리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후폭풍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지난 14일 재판부는 안 전 지사 혐의사건에 대해 업무상 위력이 행사됐는지를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간 혐의는 '항거 불능' 상태에 이를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하고, 준강간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야만'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속적인 권력관계가 성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도식화된 '물리적 저항이나 피해 입증'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여성계와 정치권은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입법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보수적인 사법부 법해석이 미투 운동이 추구하는 양성평등 지향성을 가로막아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민스 노 룰'은 어떤 환경과 상관없이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드러냈는데도 성관계가 이뤄졌을 때 이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상담하다 보면 할 수 있는 만큼의 거부 의사를 충분히 밝혔는데도 가해자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거절 의사 표시에 반드시 귀 기울이는 게 상식이 돼야 한다"며 노 민스 노 룰 입법화 필요성을 말했다.

미투경남운동본부가 16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선고 무죄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정문에 붙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판결과 관련해 형법 297조 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고 있다. 법 개정 목소리와 함께 사법부 규탄도 이어지고 있다. 미투경남운동본부는 16일 창원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 전 지사 무죄 판결을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안희정 성폭력 건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가지고 업무현장에서 비서인 직원을 위력에 의해 강간 추행한 사건"이라며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가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언급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이번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정치·사회·경제적 권세를 가진 자의 대표적 사례이며, 이 사건에 대한 제재는 우리 사회 변화의 지표가 될 것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1심 판결 한계를 뛰어넘는 의미 있고 정의로운 사법부의 다음 응답을 기다린다. 기대에 부응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내고자 더 크게 연대하고 더 당차게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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