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명맥 이어온 도내 학교들
광복절 맞아 경남도교육청 일제강점기 사진 14점 공개
도내 개교 100년이상 48개만세 운동의 거점 되기도

일제 강점기 학교는 어땠을까? 경상남도교육청은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생활 모습이 담긴 기록물 14점을 공개했다. 사진 속 교실에는 일장기가 걸려있고 내선일체(內鮮一體·일본과 조선은 한몸이란 뜻의 조선에 대한 일제 식민 정책의 표어)가 강조됐다. 14점 사진을 보고 있자니 파란만장했던 근현대사에서 명맥을 이어온 경남 교육 역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경남 학교의 시작, 개교 100년이 지난 학교 이야기를 시작한다.

◇학교 시작은

조선 말, 근대적 제도 개혁운동을 일컫는 갑오개혁(1894년)을 통해 과거제가 폐지됐다.

"과거제도 폐지로 선비들은 자신의 존재기반을 상실했다. 그렇지만, 과거제도를 대신한 새로운 근대적 교육제도는 신분의 장벽 속에서 자신들의 꿈을 안으로만 곱씹어야 했던 더 많은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신분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 한번 힘껏 토해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학교는 구원의 장소였다. 사농공상의 견고한 신분제도가 붕괴한 후 그 거대한 사회적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시공간의 탄생, 그것이 바로 학교였던 것이다." <학교의 탄생>(이승원 지음) 중

▲ 1941년 진주초, / 경남교육청

1895년 고종 황제 명으로 교육조서가 발표된다. 이제 학교는 근대 사회의 핵심적 상징이 됐고, 정치·상업·농업·사법·군사 등 모든 분야는 학교를 통과해야만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고종의 교육조서 반포 이후 관립학교뿐 아니라 사립학교도 우후죽순처럼 설립됐다. 전국적으로 3000여 개 학교가 신설됐다.

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는 1895년 경상우도소학교로 시작한 진주초등학교다.

고종은 교육개혁 목적으로 서울 5곳과 행정권역별로 13곳에 소학교를 설치토록 했다. 진주초는 부산·경남을 통틀어 유일한 소학교였다. 의병 봉기 등으로 2개월 만에 휴교한 학교는 다음해 학교 이전·교명 교체 후 학생 수 20명, 교원 2명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한국 최초 남녀공학 학교라는 기록도 있다.

▲ 1907년 하동군수와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하동군립학교를 설립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는 일제에 강점당했다. 사진은 학교에서 무술 훈련을 받고 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이다. / 경남교육청

이번에 도교육청에서 공개한 14점 사진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1941년 진주초(당시 진주제일공립국민학교) 지리시간 사진이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지구본과 함께 군복을 입은 선생님의 모습으로 지리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일제는 식민정책과 대동아전쟁의 당위성을 강조하고자 주입식 교육을 했다. 강직된 분위기의 수업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보여준다.

진주초는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본관과 강당이 전소해 주춧돌만 남고 학교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이후 재건돼 역사를 이어온 진주초는 1996년 개교 100년주년을 맞았다.

◇'개교 100년' 도내 48개 교

도교육청은 지난 2009년부터 학교역사 찾기 운동을 추진한 결과 2016년 '개교 100년 학교 이야기'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는 학교 설립 1세기를 넘는 도내 45개 학교의 역사를 사진에 담았다.

지역별로는 창원이 성호초(1901년 개교), 웅천초(1906년), 창원초(1907), 진동초(1908), 경화초(1912), 도천초(1912), 창신중·고(1908), 성지여중(1910), 마산여고(1915) 등 10곳으로 가장 많고, 진주가 진주초(1895), 배영초(1908), 봉래초(1910), 정촌초(1916) 등 4곳, 함양에도 지곡초(1907), 백전초(1908), 함양초(1911), 안의초(1912) 등 4곳의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학교가 있다. 또, 합천에는 초계초(1907), 합천초(1908), 삼가초(1911), 사천에도 사천초(1905), 삼천포초(1905), 곤양초(1911) 등 3곳의 학교가 있다. 이 밖에 거창 거창초(1907)와 위천초(1912), 산청 산청초(1908)와 단성초(1908), 하동 양보초(1907)와 하동초(1907), 남해 남해초(1905)와 이동초(1910), 함안 칠원초(1906)와 함안초(1908), 김해 동광초(1898)와 합성초(1909), 양산 양산초(1906)와 보광중(1916), 창녕 창녕초(1905)와 영산초(1908) 등도 학교 설립 1세기가 넘는 학교다. 통영초(1908), 고성초(1906), 의령초(1910), 밀양초(1897), 거제초(1907) 등도 100년 이상 역사를 쓰고 있다.

▲ 1942년 창원 성호초등학교. 교사는 칠판에 대동아전쟁, 동아공영권확립, 세계평화를 적어 전쟁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경남교육청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김해 진영대창초(1919)·고성 회화초(1919)·창원 성지여고(1910)가 추가돼 총 48개 교가 됐다. 성지여고는 2016년 집계 때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일제강점기 일본에 맞선 학교 이야기를 하나 꼽으라면 '경남 최초의 사립학교' 창신고등학교의 전신인 창신학교가 대표적이다.

창신학교는 1939년 7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일제탄압으로 강제 폐교됐다. 광복 이후 창신초급중학교가 설립(재건)돼 현재 창신중·고교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또 창신학교는 1914년 축구부와 야구부를 만들고, 가죽공이 귀해 연습할 때는 새끼줄을 뭉치거나 헌 옷을 모아 축구공을 만들어 짚신 발에 공을 차게 했다. 야구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했는데 이것을 마산 축구와 야구의 시작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창신학교에서 일본을 이기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체육을 중시했는데, 그 종목 중 하나가 야구다.

경남교육청 백수령 기록연구사는 "100년 이상 역사를 지닌 학교는 창신학교와 밀양보통학교와 같이 만세 운동의 거점이 되는 등 시대 변화를 이끈 장소다. 기록적 관점에서도 개교 100년 학교 가치는 상당하며 사료를 체계적으로 찾아 정리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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