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 에트루리아인들의 본거지
BC 9~3세기 번성한 국가 고대 로마에 막대한 영향
금속·도자기 기술 뛰어나

아펜니노산맥은 아레초에 이르러 좌우로 갈라지는데 그 갈라진 틈바구니에 아레초가 분지 형태로 앉아 있다. 이것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지점이 아레초의 중심부를 지키고 있는 메디치가의 성이다. 이 성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약간 낮아진 산맥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 아랫부분에 가서는 다시 합쳐지는 지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레초는 완전히 타원형의 분지에 자리하고 있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세 시간이 넘는 동안 이동한 탓에 오후 3시 정도에 점심을 챙겼다. 내가 간 곳은 주인장 단테와 그의 아내 안나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었다. 키가 훤칠하고 사람이 좋게 생긴 단테는 10유로짜리 식사를 권했다. 생수와 와인이 제공됐고 메인으로는 직접 만든 파스타 그리고 후식으로는 케이크 한 조각과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다른 곳에서는 10유로에 경험할 수 없는 식사였다.

그 맛을 못 잊어 이틀 연속해서 찾아갔다. 더욱 친근하게 악수까지 청하면서 어제와는 다르게 마늘이 들어간 소스까지 추가해 주었다. 서로 말이 잘 통하지는 않지만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런 내게 안나가 오더니 테이블에 깔린 종이에 "dolce?", "deser?"라고 썼다. 맛있었느냐? 디저트를 가져와도 되느냐? 라는 말이다.

드디어 토스카나다. 토스카나(Toscana)라는 지명은 그리스인들이 에트루리아인들을 티레니안(Tyrrhenians)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주로 활동했던 이탈리아 서부 해안도 이후에는 티레니아해(Thrrhenian sea)로 불리게 됐다. 이를 따라 로마인들도 에트루리아인을 '투스키'라 불렀고 결국 토스카나는 에트루리아인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역시 태양부터 다르고 하늘도 다르다. 어제, 오늘 연거푸 멋진 태양 아래 파란 하늘이 내리는 선물 세례를 충만하게 받았다. 토스카나 지방은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 피렌체를 중심으로 자연과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고장이다. 이곳은 기원전 8세기가량부터 로마에 정복을 당한 기원전 3세기까지 에트루리아인들의 본거지였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 종교와 정치체제를 가진 민족이었다. 이들의 문명은 매우 선진적이어서 로마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 에트루리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소아시아에서 기원전 10세기 무렵에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왔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다.

◇이탈리아 유일 천체시계

아레초시에서 발행한 <토스카나의 아레초>라는 작은 책자에는 '우리의 선조 에트루리아인'이라는 제하에 이 도시에 남겨진 에트루리아인들의 유적이나 문화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을 해 놓았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구가 에트루리아에 살았던 시기는 서기전 9세기에서 서기전 3세기까지이며 그런 역사를 전시해 놓은 곳은 아레초 시내 로마의 원형경기장 옆 고대 박물관이다. 이런 많은 유적들을 분석해 볼 때 에트루리아인들은 금속 분야와 도자기 분야에 비범한 기술을 가졌다."

"특히 1553년에는 시의 성곽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키메라가 발굴되었는데 동으로 만들어진 이 키메라는 에트루리아인들의 금속가공 기술이 최고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들 외에 아레초에서 2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코르토나(Cortona)와 카스티글리온 피오렌티노(Castiglion Fiorentino), 피아자 산 프란시스코(Piazza San Francesco), 산 코르넬리오 카스텔세코(San Cornelio-Castelsecco) 등지에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라고.

살바토레가 만든 천체시계.

아레초의 중심부에 자리한 메디치가의 성 남쪽에는 시의 다운타운이 있고 그 다운타운의 맨 위 측에는 중앙광장(Pizza Grande)과 산타마리아 델라 피에프 성당(Santa Maria della Pieve)이 있다. 이 성당의 보물은 다름 아닌 천체 시계다. 5유로의 비교적 착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시간은 오전 11시45분, 15분만 기다리면 12시 정각에 시계가 타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안내 센터 직원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곧장 3층을 지나 타워로 올랐다.

3층에는 좁은 방 안에 어른 키 높이 정도의 육중한 시계가 '척 척 척' 톱니바퀴 소리를 내며 시간을 끌어가고 있었다. 2층부터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시간이 스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영국에서 왔다는 3대 가족 5명과 같이 '끌려가는 시간'을 숨을 죽인 채 지켜봤다. 정각 12시가 되자 이 육중한 시계의 톱니바퀴에서 해머 같은 것이 작동되어 힘이 가해지더니 순간 쇠로 만들어진 체인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온갖 기계가 일순간에 작동되어 타워에 있는 거대한 종에 시간이 전달되자 드디어 종이 울렸다. 그러더니 시내에 있는 모든 교회들의 종들도 따라서 합창을 하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온 시내가 종소리로 가득 찼다.

그들이 말하는 이 천체 시계는 유럽에서도 희귀한 것일 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1552년에 펠리스 디 살바토레(Felice di Salvatore)라는 시계 장인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46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해와 달, 낮과 밤, 그리고 4계절과 무수한 세월들을 어김없이 이끌어 가고 있다.

메디치가 성채 유물 전시실.

◇선조에 자부심 '아레초' 사람들

교회 타워에서는 시가지가 훤하게 보였다. 야트막한 건물들,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아펜니노산맥에 둘러싸인 도시는 붉은 비행접시가 내려앉은 것처럼 장중했다.

바로 아래에 보이는 중앙광장은 이 도시의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예술의 중심지다. 매월 첫째 토·일요일에는 세계 최대의 골동품 시장이 열리는데 700여 상인들이 광장과 골목길을 채운단다. 또한 9월에는 승전을 기념하는 창던지기와 같은 제전이 열리기도 한다.

별처럼 나타나 혜성처럼 사라져 버린 에트루리아인들, 로마보다 훨씬 오랜 역사와 선진 문물을 보유했던 그들, 한때 로마까지 지배했다는 그들은 불과 500년 정도의 세월에 영원히 그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이제 그들을 보려면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나 바람에 휩쓸려 나간 언덕 언저리로 가야 한다.

산타마리아 델라 피에프 성당의 중앙광장.

아레초의 맛집 단테와 안나의 식당.

어느 나라나 흥망성쇠는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나 예술과 문화를 지배했던 그들이 통치 체제나 정치체제에 대한 논쟁이나 국가적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함으로써 후발 주자 로마에 그들 고유의 언어를 포함한 그 흔적까지 빼앗겨 버린 것이다. 물론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은 로마에 그대로 전달 됐겠지만 그에 비해 로마는 문화와 예술보다는 정치와 통치 방식에 먼저 눈을 뜬 민족이었다.

오늘날 이들 에트루리아 후손들인 아레초 사람들은 '우리의 선조 에트루리아인'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조상 에트루리아인들의 정신이 로마를 잉태하게 만들었고 그 정신이 오늘 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믿는다. 시간을 이끌어 가고 시간의 중심이 되었던 그들의 선조들이 만들어 냈던 찬란한 문화를 기억하면서 시간마다 울리는 천문시계 소리에 그들의 시간과 삶을 조율하고 있다. 

아레초의 광대.

/글·사진 시민기자 조문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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