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뗄 때마다 보이는…명승 중 명승인 이유

거창 하면 으레 따라붙는 이름 '수승대'. 절경이 아닌 때가 없지만, 여름 한낮 수승대만큼 시원한 곳은 드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수승대를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영호남 명승 중 하나인 경상도 '안의삼동'에 속하는 까닭입니다. 안의현에 속한 세 동천(화림동·심진동·원학동)을 일컫는 안의삼동에서도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은 빼어난 지세로 지금도 사랑받습니다. 취재를 이유로 찾은 수승대였지만, 시원한 계곡과 절경에 흠뻑 빠져 그만 열심히 즐기고 왔다는 후문입니다. 수승대만 들렀다 가면 섭섭하죠. 거창시장 순대거리에서 파는 피순대는 입맛을 자극합니다.

◇수승대(위천면 황산1길 60-6)

삼국시대 이후 수송대로, 조선시대 신권(1501~1573)이 머무를 때는 암구대로 불렸던 수승대. 지금 쓰는 수승대 명칭은 1543년 이황이 개명했다. 신권의 호에서 빌린 요수대, 구연대, 모현대라는 명칭도 있다. 빼어난 경관은 오롯이 수승대를 이루는 하얀 반석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 주변을 이루는 수목이 빚어낸다. 여름에만 절경일까. 눈 덮인 수승대 경치는 청정 그 자체다. '국민 관광지'라는 말이 괜히 붙는 게 아니다.

여름 물놀이 명소인 수승대 계곡

◇구연서원

1540년 신권 선생이 서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치던 곳. 강당과 서원의 문루인 관수루가 남아 있다. 서원 안에서는 비석을 받치는 커다란 거북 돌을 볼 수 있다. 특히 군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비유하는 '산고수장(山高水長)'을 업는 거북의 위용이 대단하다. 그 시절 여름날 관수루에 올라 수승대를 바라보며 더위를 잊었겠다.

구연서원

◇요수정

신권 선생의 호를 붙인 정자로 계곡 사이를 두고 구연서원과 마주 보고 있다. 1542년 건립됐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뒤 수해를 입었다. 후손들이 1805년 현 위치에 옮겨 세웠다. 소나무 숲에 들어선 정자는 공자의 요산요수(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와 딱 맞다.

◇거북바위

계곡 중간에 떠 있는 바위가 마치 거북처럼 보인다 해서 불리는 거북바위. 구연서원을 앞에 두고 바라봐야 제대로 된 모양을 알 수 있다. 거북바위뿐만 아니라 물가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글이 예사롭지 않다. 퇴계 이황의 시가 있고 시문을 쓴 붓을 씻으라는 세필짐이라는 글씨도 선명하게 파여 있다. 남길, 기억되길 바랐던 마음이 깊다.

▲ 거북바위

◇황산전통한옥마을

수승대를 빠져나와 도로 하나를 건너면 황산마을이다. 잘 정돈된 오르막길 끝 거창 신씨 집성촌이 나온다. 신권 선생이 터를 잡은 후 크게 번창했다는 마을이다. 옛 담장이 잘 보존된 한옥은 저마다 '교감댁', '국장댁', '학자댁', '조합장댁'이라는 택호를 달았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곳마다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능소화가 흐드러져 있다.

황산 한옥마을 신씨 고가
18.jpg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