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비유·은유적 표현 대신, 사진으로 직접 찍어 의미 전달

"단 한 번, 세상 위로 날아오르기 위해/천 년의 밤을 기다려 왔다/ 자, 이제/ 하늘로 올라갈 시간이다." (곽경효, '날아라, 용' 전문)

새벽인지 저녁인지 어스름 하늘을 배경으로 삐죽이 솟아오른 검은 나무 둥치. 시인은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그가 사진을 찍은 그 찰나에 천 년의 세월이 담겼다.

디지털 사진과 시의 만남이라는 '디카시'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다. 이를테면 시인이 이룬 사물의 재발견, 이를 비유, 은유 같은 수사법을 쓰지 않고 사진으로 직접 보여준다. 독자는 시인의 감성을 마치 시인의 눈을 통해 그대로 보는 셈이다. 한 편을 더 보자.

"프로메테우스처럼 감나무가/붉은 심장을 꺼내/쪼아 먹히길 기다리고 있다/해마다 봄이 되면/심장은 다시 자랄 것이다." (이기영 '까치밥' 전문)

〈디카시의 매혹 2〉

시인은 가지 끝에 남은 감에서 심장을 상상했다. 글만으로도 충분히 그 감성이 이해되기는 한다. 하지만, 바로 옆에 같이 실린 사진에 심장처럼 붉고 둥근 감을 보는 순간 시인이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디카시의 매혹 2>는 고성 디카시연구소에서 펴낸 두 번째 공동시집이다. 창간 12년을 맞은 디카시 전문 계간지 <디카시>를 통해 발표한 작품 중에서 선정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디카시라는 장르가 자리를 잡으면서 나름의 성과를 이루고 있음을 이 시집이 증명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진 화질이다. 이번 시집에는 '디지털 시대, 새로운 시의 발걸음'이란 부제가 달렸다. 디카시가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문학이라고 볼 때 일부 사진은 민망할 정도로 화질이 별로다. 이미지의 선명성은 디지털 세대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또 하나, 디지털을 활용한 작품이면 전자책으로도 만들 법한데 종이책 발간만 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창연출판사 펴냄, 167쪽, 1만 3000원.

'날아라, 용'. /디카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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