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초등학교에서 남학생에게 앞번호를 매기고 여학생에게 뒷번호를 부여하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3월 모 초등학교 교장이 학생들을 성별 순으로 번호를 매긴 것에 대해,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는 어린 학생들에게 성차별 의식을 갖게 할 수 있는 관행이라고 판단하고 시정을 권고했다.

이번 진정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인권위는 이미 2005년에도 비슷한 결정을 한 바 있으며, 또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남학생은 1번, 여학생은 30번부터 출석번호를 부여한 것이 인권위에 접수되면서 해당 학교장이 차별을 시정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서 학생의 성별에 따라 번호를 차별적으로 매기는 케케묵은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한번 뿌리내린 성차별적 관습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문제가 된 학교장이 차별적 번호 부여를 다수결로 채택한 것이라고 변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성차별이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다수의 생각이라고 해서 성차별이 정당화될 수 없음에도 비슷한 사례는 허다하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째 숫자를 남성에게 1, 여성에게 2로 매기는 것도 초등생 성차별적 번호 부여라는 어이없는 관행과 매우 유사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오래도록 해왔으니 뭐가 문제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국민을 성별에 따라 차등으로 번호를 매기는 행위가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음에도 사회구성원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만큼, 성차별 인식이 내면화되어서는 안 된다. 호주제 폐지, 성매매 금지, 여성가족부 설치 등도 호주제나 성매매가 당연한 관습인 양 치부되던 인식을 뚫고 만들어졌다. 여성의 몸을 도촬하거나, 불법영상물을 유포·판매·접촉하거나, 데이트폭력 같은 여성혐오 범죄가 늘고,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를 당하거나, 여성혐오 정서가 조직화를 보이는 것 등도 성차별 인식이 습관처럼 자리잡은 사회를 숙주로 삼아 자라고 있다.

그럴수록 법과 제도의 개선, 성범죄 처벌 강화가 중요하다. 성매매의 경우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데 성구매자 처벌이 큰 역할을 한 것에서 보듯 묵은 관습처럼 치부된 성차별을 타파하는 데 당국의 분발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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