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처럼' 빛나는 신예 7인

지난주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가 예상치 못하게 지연이 돼 꼼짝없이 공항에 갇혔다. 다행히 가방에 챙긴 책 한 권이 있어 어렵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그때 꺼내 읽은 책이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매년 4월 문학동네에서 펴내는 책이다. 2010년에 제정한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이하 신예 작가가 써낸 작품 중 가장 빼어난 일곱 편'에 시상한다.

올해 펴낸 작품집에는 박민정, 임성순, 임현, 정영수, 김세희, 최정나, 박상영(사진순) 작품이 실렸다. 차례대로 '세실, 주희'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그들의 이해관계' '더 인간적인 말' '가만한 나날' '한밤의 손님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다.

작품집은 작품이 나오고, 작가노트가 뒤에 붙고, 해설이 따르는 구성이다. 작품의 여운은 작가노트와 해설을 통해 길게 이어진다. 젊은 작가를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 맞게 수상작품집을 펴내면 1년 동안 특별 보급가로 판매한다. 단편소설을 주로 읽는 독자, 언제나 새롭고 참신한 작품을 찾는 독자뿐만 아니라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에게도 작품집은 좋은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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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묘미는 짧은 데 있다. 한 편을 읽는 데 드는 시간이 30분, 길어야 1시간일까.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거나, 타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단편은 크게 빛을 발한다. 일상 속 독자에게 단편소설은 비현실적인 세계를 제공한다. 물론 일상의 소재로 써낸 글이라면 친근감이 앞서 들겠지만, 읽다 보면 이 세계가 과연 나의 세계와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순간에 이런 친근한 이질감은 새로운 동력이 되기도 한다.

각 단편은 독립적으로 숨을 쉬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먼저 읽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니까. 정해진 시간의 양에 맞춰 적당한 길이의 작품을 골라 읽어도 좋겠다. 앞서 일상의 소재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번 작품집에는 최근 쟁점이거나, 쟁점이었던 소재를 다루는 작품이 꽤 많다. 가령 대상을 받은 박민정 작가 '세실, 주희'는 '혐오'를 다룬다.

임성순 작가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의 성격은 '공포소설'이지만, 작품은 재벌가의 걸작 컬렉션이 세상에 공개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팝아트 거장의 걸작 소유권',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임현 작가 '그들의 이해관계'는 또 어떤가. 지난해부터 대형 교통사고 소식을 꽤 자주 접했던 것 같은데, 이를 소재로 삼았다. 정영수 작가는 '안락사'를 소재로 '더 인간적인 말'을 썼고, 김세희 작가는 '포털 알고리즘' '블로그 마케팅' '살균제'라는 다소 이질적인 소재를 '가만한 나날'이라는 한 작품에 녹여냈다.

박상영 작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소수자'를 풀어낸다. 각 작품의 소재는 완결형인 듯하면서,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또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최정나 작가 '한밤의 손님들'에 등장하는 엄마와 동생은 '나'로부터 각각 오리와 돼지로 불린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부조리 상태'에 가깝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묘사하는 방법 등 여러모로 독특한 시각이나 전개를 원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듯하다.

신진 작가 작품이 매력적인 까닭은 패기에 있다. 거침없이 치고 빠지는 그들만의 원숙함은 기성 작가의 작품과는 또 다른 맛이다.문학동네 펴냄, 366쪽, 특별 보급가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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