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차별받는 사람들과 늘 함께했습니다"
사회적 약자 위한 입법활동
SNS·어록·책 등 남긴 기록
우리 돌아보는 거울 삼아야

'수오지심(羞惡之心)'.

<리더에게 길을 묻다>라는 방송(2010년 1월 24일·SBS)에서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의 모습에 대해 유시민 작가가 대답한 말이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누구나, 누가 맡아도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그런 지적을 받았을 때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새로 조명해 자기를 교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2016년 정의당 노회찬 국회의원이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정리해고제한법과 홍준표방지법을 발의할 것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것은 겸손함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부끄러운 마음이 표출되는 행태는 다양할 수 있다. 화를 내거나, 사과를 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등 마음의 순수함과 달리 표현되는 행동은 다를 것이다.

지난 7월 23일 우리 곁을 떠난 노회찬 의원의 수오지심은 그의 생을 건 '책임'으로 마감되었다.

그는 2016년부터 내가 살고 있는 성산구를 대표한 자랑스러운 국회의원이었다. 나는 이 짧은 기록으로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생애와 활동

1956년 부산에서 출생한 노회찬 의원은 초량초등학교, 부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유신독재 반대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26세인 1982년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해서 인천 등에서 용접공으로 근무했다. 세 번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삼성 엑스(X)파일 사건으로 한번 의원직을 상실했다.

7년여 의원 생활 동안 1029건의 의안을 발의, 39건이 국회 본의회를 통과했고 대표발의안 127건 중 7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주요 의안으로는 2004년 9월 14일 제출한 '민법 개정안(호주제 폐지)', 2005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 2013년 '소방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 2016년 무상급식을 위한 '학교급식법 일부개정 법률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 법률안', 2018년 'STX조선해양 및 성동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 및 회생을 위한 정부 및 채권단 등의 대책수립 촉구 결의안' 등이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참조)

▲ 2016년 4·13 총선 때 마지막 주말 선거유세. 창원시 성산구 상남시장을 찾은 권영길 전 국회의원과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던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이 모든 활동을 통해 2005년 여성단체연합 '호주제폐지 감사패'와 광복회 '친일재산환수법 통과 감사패', 2004년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국회57주년 개원기념 '우수의원 외교 공로패',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한글을 빛낸 큰 별', 2006년 조계종 '조선왕조실록환수 감사패'를 받았다.

주요 업적(조문보/정의당)을 보면 호주제폐지, 장애인차별금지법 발의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입법 활동과 삼성 엑스파일 떡값검사 명단 공개로 거대권력인 재계와 검찰 사이의 부정한 결탁을 끊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사법개혁을 촉발했다. 또한 2006년부터 현재까지 중소 상공인들의 염원인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위해 앞장서왔으며, 수수료 인하와 제도개선을 이끌어냈다. 그 외 검찰개혁 판사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비화된 사법부와 청와대 재판거래 의혹을 밝히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기고 2018년 7월 23일 향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여행을 떠났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4000만 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지난달 창원시 성산구 한 빌딩에 있는 노회찬 의원 사무실에 여러 상패가 전시돼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애도와 추모

그는 정의와 평등을 위해 스스로를 다짐하며 많은 일을 수행했다. 그가 떠난 후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의 추모와 말을 했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편지나 성명서 등으로,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는 일부는 그의 과오만을 들추어 말하거나 행위를 지탄하기도 했다.

그중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다음과 같이 성명서(7. 24)를 냈다. "고인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분으로 장애인의 인간으로의 권리를 쟁취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차별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저항하고 싸웠던 분입니다. 고인은 살아오면서 사회적 약자들, 차별받는 사람들의 편에 함께했습니다. 그들의 편에서 힘이 되려 했고 목소리를 내는 일에 함께하였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정치였고, 이 세상의 희망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천하며 보여주었습니다. …(이하 생략)"

◇기록과 역사

또한 노회찬 의원은 기록과 역사의 중요성을 아는 정치인이었다.

400권에 달하는 조선왕조실록 원본을 읽고 2004년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 서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조선시대처럼 사관이 있어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사초를 작성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는 비리니 국정조사니 하여 사회전체가 떠들썩해지는 혼란을 피하고 차분히 진실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관이 지키고 서 있다면, 의혹을 살 일은 처음부터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역대 정치사의 많은 잘못들은, 국민은 물론 역사마저도 속일 수 있다는 만용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은 오늘의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너희도 실록을 써라!"

또한 국회방송(TV 도서관에 가다)에서 해당 책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는 중 그에게 닮고 싶은 왕을 물으니 '복지정책에 기여한 젊은 시절의 세종대왕'이라고 답했다. 덧붙여, 진실은 훼손될 수 없고 모든 권력을 가진 왕의 철저한 기록은 후세인에게 거울이 되는 지침을 준다고 말했다. 권력과 생명은 유한하지만 역사는 무한하고 모든 것은 남아서 평가될 것이기에 스스로도 역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정치인이 되기를 다짐하기도 했다.

노회찬 의원은 역사를 통해 교훈하고 그것을 두려워 한 정치인이자 품격 있는 개인이었다. 또한 기록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활용할 줄 알았다. 더 나아가 과거 기록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현재 기록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정치인 중 하나였다. 지난번에 쓴 나의 글에서 드러났듯이 그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의 세부 내용을 알았고 기록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었다.

이제 노회찬 의원이 남긴 기록(SNS, 어록, 홈페이지, 도서, 시청각자료, 박물, 발의법안 등)은 그가 원했던 역사 앞에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또한 그가 떠난 후 남겨진 사람들의 눈물, 분노, 비난 등 죽음 이후의 상황도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허물이 어떠하든 약한 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노회찬 의원 앞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끝으로 나는 그의 마지막 지역구민으로서, 노회찬 의원이 짊어진 '책임'의 원인이 되는 '그들'이 어떻게 부끄러움을 표현할 것인지, 그들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지켜볼 생각이다.

노회찬 의원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역사 앞에 투명하게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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