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뻔한 헌책방에 주민들이 불어넣은 새 생명
역사·규모로 이름 떨치다 전 대표 별세에 폐업 위기
지역사회, 건물 주인 설득해 북카페도 갖춰 다시 개점

한때 존폐 위기에 처했던 창원 창동예술촌 내 헌책방 영록서점이 다시 번듯한 책방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박희찬 대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잠시 문을 닫았다가 지금은 건물주가 인수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영록서점이 정식으로 다시 문을 연 것은 지난 4월. 솔직히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헌책방을 빼고 임대를 주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창원시와 창동예술촌 관계자들 설득에 결국 건물주가 손을 들었다. 영록서점을 전국적으로 유명한 헌책방으로 만든 박 대표의 뜻을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지난 5월 찾았을 때만 해도 책 정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정리가, 정리가 끝이 안나요. 아르바이트 학생 5명이 붙어서 6개월을 매일 정리했어요. 지난해 11월부터 정리한 게 그나마 이 정도예요."

말끔하게 정리된 영록서점 1층.

건물주이자 지금은 영록서점 대표인 이미숙 씨의 말이다. 원래는 건물 4층까지 책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도 분류된 것이 아니라 그냥 쌓여 있었다. 100만 권이 넘는 장서로 유명했던 헌책방이었으니 당연했다. 영록서점을 인수하고는 2층까지만 책방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3·4층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이 씨의 이야기다.

"어차피 다시 장사를 하기로 했으니 정리를 제대로 해서 하자 싶었지요. 단골손님이 계속 오기에 일단 1층부터 정리를 한 후에 책방 문을 다시 열었어요. 2층에는 책장 들여놓고 책을 분류하기 시작했죠."

이전 박 대표처럼 미로 속에서 척척 책을 찾아낼 재주는 없었다. 다만, 잘 분류해서 깨끗하게 정리해 놓기만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오랜 단골손님은 좋은 스승이었다. 무엇을 얼마에 팔아야 할지 등 헌책방 운영 기법은 대부분 이들에게서 듣고 알게 됐다.

창동예술촌 헌책방 영록서점.

최근 다시 찾으니 현재 3·4층은 다 정리하고 1·2층만 영업을 하고 있다. 3층은 임대 공고를 붙여 놨다. 2층 창가 남는 공간에 북카페도 열었다. 탁자며 의자가 예사롭지 않았다. 알고 보니 건물주가 창고에 보관 중이던 사무용 책상과 의자, 소파를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통일성은 없으나 무언가 헌책방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다. 커피 값도 2000~2500원으로 부담 없다. 다만, 여름철에는 2층 냉방을 마냥 할 수 없기에 조금 더울 수 있다. 다행히 앉을 공간이 좁긴 하지만 1층에서도 같은 가격에 커피를 팔고 있다.

이제 책장에 꽂힌 책들 속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손님의 몫이다. 지금도 드문드문 책장에 꽂힌 책을 다 외울 듯한 기세로 꼼꼼히 훑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아는가, 박 대표가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지도 모를 굉장한 책들을 누군가 찾게 될는지도.

2층 창가에 북카페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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