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 바뀌었지만 1760년 마산창 설치 후부터 이어진 곳
250년 역사, 문화 자랑

마산 창동골목 하면 흔히 창동예술촌 골목을 연상한다. 10년 전 찾았던 골목은 그 맞은편 고려당과 황금당 쪽 옛 골목이었다.

2006년 4월, 그때는 골목산책을 순안병원(지금은 참여성병원) 쪽에서 시작했다. 불로식당이나 해거름 쪽도 갔고, 단팥죽이 맛있는 복희집 쪽도 갔다.

이 골목은 1760년에 세워진 마산조창과 연결돼 '백년골목'으로 불렸고, 지금은 그 역사를 제대로 대접해 '250년 골목'이라고 한다.

◇250년 골목

골목의 유래에 대해 2006년 4월 15일(토) 자 〈경남도민일보〉 '골목과 사람'에 이렇게 썼다.

"골목이 시작되는 곳은 맨 아래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각각 순안병원과 한국투자증권 옆 불로식당, 대한투자증권과 옛 오행당약국 맞은편의 주점 '해거름' 입구 등이다. 전체적으로 골목이 생긴 모양은 불종거리 쪽에 작은 꼬리가 달린 '사(士)'자 형이다. 1760년에 인근 제일은행 마산지점에 마산창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이곳은 지형적으로 마산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골목 중의 하나다. 장차 창동을 만들고, 부림시장을 만든 것이다."

3.jpg
▲ 250년 골목 아치./이일균 기자

그만큼 유서 깊고 사연 많은 골목이다. 사연 하나가 있다.

대중음악이 흐르는 술집 '해거름'.

지금은 고인이 된 해거름 정의교(66) 사장이 그때 그랬다. "여기서 장사 시작한 지도 28년이나 됐어요." "그 사이 찾는 사람도, 듣는 노래도 많이 변했을 텐데 특집기사 한번 쓸까요?" 그때 정 사장은 "무슨 특집…. 30년 넘어가면 한번 하자고!"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술도 마시고 추억 속의 노래도 듣고, 그 분위기에 끌려 가끔 찾을 때마다 정 사장은 단골들 '18번'을 기가 막히게 기억하고 틀어주고는 했다. 내 노래는 '댄서의 순정' 장사익 버전이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정 사장이 가게를 접고 이어서 문을 연 현 고굉무 사장이 또 그 노래를 틀어준다는 사실이다. 고 사장이 인수를 할 처지도 아니었을 텐데 미스터리다. 또 한 번 해거름에 갈 건수가 생긴 건가?

정 사장은 그때 '고모령' 이야기도 했었다.

"우리가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는데 2년 뒤인가에 이선관 시인이 맞은편 지금 의상실 자리에 식당을 시작했지요. 이선관 씨가 음식을 나르고, 부인이 아이를 둘러업고 음식을 만들었던 '반 밥집에 술집'이었습니다. 몇 년간을 하다가 이 시인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 부림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열었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지역의 예술가들이 때가 되면 모여들었던 사랑방 고모령.

이후 1988년 인근 부림시장 떡방앗간 옆으로 옮긴 고모령에서 옛 마산 문화제 격인 '대동제'가 시작됐다. 설 명절을 보낸 사나흘 후 예술인들이 고모령에 모여 서로 인사하고, 문학과 미술, 음악과 무용을 함께 나누었다.

고모령은 그 뒤 서성동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998년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10년 뒤.

골목 입구의 지형은 바뀌었다. 2012년 9월에 창동공영주차장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 지형을 완전히 바꿨다. 할매충무김밥에서 시작해 옥녀피부관리-송학통술-슈바빙으로 이어졌던 골목이 공영주차장 옆길로 확장됐다. 골목을 이었던 가게들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골목 안쪽을 기웃거리다보면 희미한 옛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산 예술영화관 리좀 옆으로 토담집이니 옛날집, 북경관 같은 작은 식당을 보듬고 있는 샛골목이 나온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려당과 황금당에서 시작해 복희집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예전 그대로다. 마산조창 자리인 옛 제일은행 맞은편 오복보리밥집-해거름으로 연결되는 골목도 온전하다.

흘러가버린 10년을, 마산의 250년을 이 골목에서 느낀다.

◇창동예술촌 골목

맞은편 창동예술촌 골목.

10년 전에 찾은 곳은 아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창동 명물이다. 학문당서점, 고깃집 정근식당과 삼도식당 같은 역사 오랜 공간부터 도시재생사업으로 탄생한 공방·화실·복합카페가 오밀조밀 골목을 채우고 있다.

헌책방 영록서점이 이 골목에 들어선 건 2014년 6월로 몇 년 되지 않았다. 그 이후 이 골목에서 나에게 가장 만만한 곳이 됐다. 그전 마산 석전시장에 있을 때만큼 넓고 은밀하지 않았지만 편했다. 설렁설렁 책을 뒤적이다 그냥 나와버리면 그만. 그럴 때 박희찬 사장이 말을 붙였다.

"커피 한 잔 하고 가지예?"

"그라까예~"

그리고 태워주었던 일회용 커피.

"이병주 <지리산> 전질이 깔끔하게 나왔는데?"

"한번 보입시더~"

...

"얼만데예?"

"3만 원 주고 가져가."

"별로 안 싼데… 아이 씨, 주이소!"

그전 언젠가 일독했던 터라 꽂아두고 한번씩 들춰보겠다는 욕구가 생겼다.

"히야~ 커피값 한번 비싸네!"

^^

그 전에도 난 <토지> 한 질을 그런 식으로 샀었다.

그분이 작년 11월 갑자기 돌아가셨다.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채워지고, 유리 사이로 켜켜이 쌓인 책만 보이는 시간이 몇 달을 넘겼다.

그리고 다시 새 주인을 찾았지만,

나는 그 앞에서 자꾸 서성거린다.

2006년 4월 15일 자 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