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꺼낸 말] 고 김혜연〈음각을 엿보다〉
직설적 시어에 묻어나는 개성

지난달 7일 오전 시인의 부고를 받았다. 김혜연 시인. 향년 61세. 마산에서 태어나 1993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다. 문학 기자 경력이 얕은 탓이다. 그날 장례식장으로 가는 대신 경남문학관으로 향했다. 1층 전시실에서 시인의 흔적을 찾았다. 그의 시집 <음각을 엿보다>(종려나무, 2013)가 막 도내문인 코너에서 작고문인 코너로 옮겨졌다. 등단 20년 만에 낸 첫 시집이었다. 그러고는 그가 남긴 유일한 시집이 됐다.

"등단 후 20년 동안 놀고먹었다/정신을 빼앗겼다/미안하다/단 한 번도/ 햇빛 앞에 서 본 적 없는/ 눈먼 시들과 함께/ 처음으로 세상구경 하려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당시는 토요일이라 문학관 정이경 사무국장 혼자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는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근무가 끝나면 바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갈 것이었다. 시인인 정 사무국장은 고 김혜연 시인의 오랜 벗이다. "구질구질한 거 싫어하고,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었어요. 어느 자리든 똑 부러지게 할 말은 하는 친구였지요. 개성 강하고 자존심 아주 세고."

그의 성격은 '주전자'라는 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발/ 입 좀 닥치면/ 안되겠니/ 주절주절 끝도 없이/ 쏟아내는 푸념에/ 지쳤다/ 할 말도 삼키면/ 약이 된다/ 때로 독이 되어/ 시린 네 몸/ 격정으로 내몰아도/ 그만 못 본 척/ 눈 감으면 안되겠니/ 있잖니/ 별것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 크게 가지면/ 순식간에 잊힌다/ 제발 줄줄 침 튀는/ 그/ 방정맞은/ 입 좀/ 닥치면 안되겠니/ 뚜껑 열리기 전에/ 바로 너"('주전자' 전문)

잔뜩 부풀어오른 분노를 억누르는 듯 짧게 끊어내는 시행(詩行), 그러면서도 연을 구분하지 않고 끝까지 몰아세우는 직설적인 시어(詩語).

반대로 바깥이 아닌 내부로 파고든 시인의 의식은 산문시로 우려진다. 산문시에도 직설적인 시어는 그대로 살아 있다. "저 거친 젊음 따라잡지 못하는 늙은 암컷이라네 오래된 생식기와 낡은 껍데기를 가졌을 뿐이라네 꺾인 발톱 숨긴 채 한 번도 부패된 적이 없는 악다구니만 남발한다네"('푸른 권태기' 중에서)

복국집을 하던 어머니를 닮아 음식 솜씨가 좋던 시인이라고 한다. 사람은 가고 그가 만든 맛난 시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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