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내일보다 행복한 '오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땐 하루 하루가 회색빛이었다. 아침에 또 일어나면 지겨운 하루가 반복된다. 영어 독해, 단어 외우기, 외워봤자 시험에 나오지도 않을 것 같은 내용들을 공부했다. 점심은 싼 것만 먹었다. 옷도 좋은 것 사고 싶은데, 어디 놀러 가고 싶은데, 아무것도 못했다. 친구도 못 만났다. 술도 못 마셨다. 단 한 번도 시원하게 뭘 해본 적이 없었다. 답답했다. 그냥 계속 독서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살아야 했다. 공무원들을 보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내가 더 초라해졌다.

시험 때가 다가오면 상상을 한다. 이번에 합격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정장 입고, 관공서에서 일할 수 있을까? 밥도 맛있는 거 먹겠지? 여자친구도 사귈 수 있을까? 내 모든 희망이 다 공무원 합격에 있었다. 현재의 나는 너무 초라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뒀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 지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과연 그때가 진짜 힘든 시간이었을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그래,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의 장점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쨌든 어렸다. 지금보다 옷이 더 잘 어울렸다. 내 자동차도 있었다. 부모님의 재정상태가 지금보다 좋았다.

공부한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내가 언제 그렇게 유명한 강사들 수업을 들어볼까? 그리고 그 시절 내가 좋아하는 후배와 매일 같이 공부하고 밥도 같이 먹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그 후배는 나보다 먼저 시험에 합격해서 다른 지방으로 떠났다. 그녀가 아직도 보고 싶다. 만약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그 후배랑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때는 감사할 줄 몰랐다. 어쩌면 좋고 나쁜 시절이란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인 것일까? 세상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 당시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았다면, 현재에 만족하고 미래에 지나친 관심을 두지 않았더라면 그 생활을 훨씬 더 잘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기에 내가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밤 친구와 용지호수에서 음악분수를 구경하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또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몇 번을 만나도 변함이 없다. 나는 친구에게 언젠가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사 먹자고 했다(사실은 지금도 충분히 잘 먹고 다닌다). 항상 우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이 느낌은 내가 공시생 때에도 느낀 감정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 반복되는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드디어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가 암울하다는 당연했던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 현재도 괜찮을 수도 있다. 친구와 나는 아직 30대이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용지공원을 걸었다. 친구는 내 사진을 찍어주고 시시한 이야기들을 하며 웃었다.

나는 현재가 우리의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 한 번도 현재가 괜찮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거짓말의 발명>이란 영화를 추천해줘서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사람들은 아무도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사실만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게 나온다. 그러다 누군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였다. 그 단순한 거짓말로 인해서 세상에 없던 종교가 생기고, 소설이 생기는 등 세상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바뀌게 된다. 어쩌면 내가 발견한 '현재가 실제로는 행복하다'는 사실이 이 세상에 그 정도의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것이거나, 석가모니 다음으로 발견한 것은 아닐까?

물론 지금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안정적인 취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를 지켜낼 수 있고, 현재를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시민기자 황원식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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