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고원의 깊은 계곡행, 곳곳마다 군인 검문소 있어 국경 너머엔 아프가니스탄 주행 중 사고 난 트럭 발견
운전기사, 크레인 기다리며 여유롭게 행인들과 이야기

해발 4200m 카라쿨 호수를 지나서 남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지나오면서 가장 높은 구간은 4655m까지 올라갔다. 고산병이 살짝 찾아오는지 머리가 띵하게 아팠다. 아들 역시 그렇다고 했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두통약을 한 알 먹었더니 거짓말같이 아픔이 사라졌다. 타지키스탄 해발 3500m에 있는 도시 무르고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고산지대를 지나온 터라 우리는 숙소를 호텔로 정하고 편히 쉬기로 했다.

그러나 도시 전체가 정전이고 호텔마저도 저녁에만 두 시간 정도 자체 발전기를 돌려서 간신히 전등을 밝히는 수준이었다. 화장실은 투숙객들이 함께 쓰는 공용화장실이었고 샤워할 물도 부족해 조금 불편했다.

무르고프 도시 안에는 특별한 시장이 있었다. 줄지어 선 가게들은 모두 네모난 화물 컨테이너로 만들어졌다. 이유가 궁금해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이곳을 거쳐 중국으로 향하던 화물차들이 두고 간 것이라고 했다. 한겨울 빙판길을 넘지 못해 하나, 둘 버리고 간 것을 사람들이 가지고 와서 지금의 시장을 형성했다고 한다. 무르고프는 파미르고원에 고립된 도시 같았다.

▲ 연약 지반에 화물차가 전도했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들. /시민기자 최정환

우린 또다시 파미르고원의 깊은 계곡 와칸 밸리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 곳곳에는 타지키스탄 군인 검문소가 있었다. 과거에는 여행객들이 지나가면 군인들이 돈을 요구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행객들이 조금 편해지자고 먼저 돈을 준 건지 군인들이 요구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여권과 비자만 보여주면 별문제 없이 통과시켜줬다.

그러나 세 번째 검문소를 지날 때는 문제가 발생했다. 아들 지훈이가 친구 부호메달리에게서 선물받은 마르코폴로 뿔을 가지고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희귀동물이라 그런지 어떤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경 사이 산골에서 가져온 거라 증명서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군인에게 마르코폴로 뿔을 빼앗기고 돌아서는데 지훈이는 아쉬웠던지 눈물을 조금 보였다. 아빠로서도 어찌해 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파미르에서 제일 높은 도로 뒤편에 4655m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길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국경 같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 너머로 아프가니스탄이 보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도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나는 곳인지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계곡 건넛마을 모습은 그저 조용한 시골 마을 같았다. 사람도, 군인도 간혹 멀리서 보이긴 했지만 어떠한 위협이 되진 않았다. 금방 저녁이 됐다. 하루를 묵으려고 조용한 마을에 들러 홈스테이할 집을 구했다. 그곳 사장님은 근처에 온천이 있다며 한번 가보라고 추천했다.

다음 날 아침 지훈이와 함께 목욕하고자 온천을 찾아 나섰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다시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오르니 '비비 파티마'라는 건물이 나타났다. 여기 온천은 뜨거운 물이 땅 밑에서 올라오는 게 아니라 바위틈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조그마한 건물에 탕이 두 개 있었다. 타지키스탄에 와서도 목욕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운하게 씻은 후 우리는 이쉬카심으로 향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타지키스탄 이쉬카심에서는 비자 없이 매주 한 번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국경 사이에서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시장을 통해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서로 만나 물건도 사고팔고 안부도 주고받았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 전쟁 상태에 놓이면서 더는 시장이 열리지 않게 됐다. 마을 사람들도 물론 아쉽겠지만 새로운 볼거리를 놓친 우리도 무척 아쉬웠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데 길옆으로 완전히 뒤집힌 큰 트럭 한 대가 나타났다. 나는 사람이 다쳤을까 걱정이 되어 얼른 오토바이를 세우고 트럭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뒤집힌 차 앞에 어떤 사람이 돗자리를 편 채 수박을 먹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사고 난 트럭 운전기사였다. 그는 우리에게 함께 수박을 먹고 쉬다 가라고 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사고가 난 차의 운전기사가 너무 여유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트럭 운전사는 연약지반에 차가 뒤집혀 사고가 나서 크레인을 불렀는데, 여기가 너무 시골이라 언제 올지 모른다며 그냥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음식을 트럭 운전사에게 나눠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고가 난 차 앞에서 생각지 못한 파티가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모여 앉은 사람 중에는 여행객도 있었고 경찰·군인도 있었다. 왜 사고가 났는지부터 시작해서 아들과 함께 한국부터 시작된 우리들의 여행기, 파미르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뒤집힌 차를 앞에다 두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어리둥절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가진 게 별로 없어 트럭 운전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생수 2병과 약간의 돈을 트럭 운전사에게 내밀며 위로를 해주었다. 그는 너무나 고마워하며 우리의 여행을 응원해줬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한 이곳. 높은 산, 깊은 계곡, 척박한 땅에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이 되는 와칸 밸리 계곡 옆길 비포장도로를 계속 따라가자 이번에는 모래밭이 펼쳐졌다.

화물 컨테이너로 이뤄진 무르고프 시장 모습.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데 감촉은 우리나라 해수욕장의 모래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밀가루같이 고운 모래가 깔린 도로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푹신한 모래밭이라 다행히 아들과 나는 다친 데는 없었다.

나는 이것도 기념이라며 아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다. 짐을 다 푼 후 오토바이를 바로 세우고 앞으로 빠져나오려니 모래밭이라 혼자 힘으로는 앞으로 나가기 어려웠다. 기다리고 있으니 승용차 한 대가 멀리서 다가온다. 우리를 쓱 훑어보더니 승용차에서 남자 셋이 내려 아무 말 없이 우리 오토바이를 모래밭이 끝나는 지점까지 밀어주었다. 그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마음이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난 것 같다. 이제 타지키스탄 파미르고원 여행도 점점 끝이 보인다. 수도인 두샨베만 지나면 우즈베키스탄으로 진입한다. 유라시아 횡단기의 절반이 지나는 셈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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