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낮춰주고 자극 줄이는 효과
여성 전유물 여겼지만 남성에게도 인기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해야 하는 여름이다. 불볕더위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그늘이 필요하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에어컨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지난 주말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선배를 만났다. 체온을 웃도는 더위에 바깥에서 일해야 하는 선배는 "네가 상상을 초월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괜한 너스레가 아니었다. 몇 달 만에 보는 선배는 땡볕에 얼굴이 그을려 밤에 만나면 알아보지도 못할 거라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농촌처럼 한낮에는 잠시 일손을 놓고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은 순진했다. 시급으로 일당을 받는 막노동판에서 더위는 큰 변수가 될 수 없었다. 오전 7시 작업을 시작해 오후 4시 30분이면 끝나는 일과였다. 40분 남짓 점심시간에 서둘러 밥을 먹고 그늘에서 잠시 눈 붙이고 나면 다시 땡볕으로 나간다. 얼음물과 모자·수건만 챙긴 채.

폭염 속에서 밭일에 나섰다가 할머니들이 잇따라 숨진 뉴스를 모를 리 없었다. "어르신들은 밭에 혼자 나가서 그런 거야. 공사 현장에서는 여럿이 같이 일하니까 버틸 만해"라는 선배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선배와 헤어지면서 돌아오는 길에 선배에게 줄 선물이 떠올랐다. 비 오는 날에 쉬는 선배에게 우산보다 필요한 게 양산 같았다. 일할 때는 못쓰겠지만 잠시라도 그늘이 되어줄 양산이 필요하지 않을까.

올여름 양산 쓰는 남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상 역대 최고 폭염을 기록한 일본에서 남자 양산 쓰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양산남자'를 뜻하는 '히가사단시(日傘男子)'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다. 도쿄 근처 사이타마 현에서는 온열질환 방지대책으로 '양산이 남자를 구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남성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양산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양산을 쓰면 체감온도가 3∼7도 내려간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다룬 국내 한 지역일간지 기사 제목은 '무더위 앞에 체면이고 뭐고… 일본서도 양산 쓰는 남자 급증'이었다. 양산 쓰는 게 남자 체면을 깎는 일인가? 언제부터 양산이 여성 전유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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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양산(陽傘)을 '주로, 여자들이 볕을 가리기 위하여 쓰는 우산 모양의 큰 물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산(雨傘)은 '우비의 하나. 펴고 접을 수 있어 비가 올 때에 펴서 손에 들고 머리 위를 가린다'고 돼 있다. 태양 아래 남자와 여자가 자외선에 노출되는 건 다르지 않을진대 여성들이 주로 양산을 쓰는 이유는 뭘까. 여성들 피부가 유독 약해서? 햇볕에 얼굴이 타면 잡티가 생기니까?

요즘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멋을 부리고, 화장하는 남자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평소 양산을 쓰지 않는 이유가 귀찮아서일 뿐인 나로서는 '양산 쓰는 남자'가 핫한 뉴스로 떠오른 올여름 더위가 새삼스럽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입추다.

반갑다 가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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