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길레르모 오도넬이 만든 '위임 민주주의'가 있다. 위임 민주주의는 대통령이 의회와 정당을 우회해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며 대통령이 주도하는 행정 명령과 행정 입법이 자주 발동되어 입법부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설명한다. 창원시의 공론화위원회·시민갈등관리위원회 추진 소식을 접한 필자는 오도넬의 위임 민주주의가 떠올랐다. 집권에 성공하자 공론 조사를 거쳐 시민의 이름으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논리 앞에 공약에 대한 책임성보다 여론에 따른 정치를 더 중시한 데서 비롯된 기구이기 때문이다.공론화위원회는 마산 해양신도시 조성, 신세계 스타필드 입점, 도시공원 민간특례 개발 등 지역민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대형 현안들을 다룬다. 분야별 20여 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와 500명의 지역·성별·나이 등 적정비율로 반영한 시민 풀(POOL)을 구성한다. 시민 풀에서 선발한 50~100명가량의 시민대표참여단이 무제한 토론을 하고 권고안을 창원시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공론화위원회는 독립적 지위로 공정한 관리자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창원시는 의사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잘 관리하고 지원할 것'이라는 것 자체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의사 결정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가 마땅히 져야 할 행정의 책임성 대신 여론을 앞장세우고 책임 소재를 두 위원회에 전가할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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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중심으로 2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시민갈등관리위원회도 우려스럽다. 시의 역할을 줄이고 그 역할을 선출되지 않은 민간으로 옮긴 것도 문제이지만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들을 대거 참여시켜 이뤄지는 반면 전문가들이 결정했다는 핑계로 105만 창원시의 정책 결정을 할 우려가 크다. 더구나 시민갈등관리위원회는 시가 직접 참여하여 사안이 생기면 시청 담당 부서가 진단표를 만들어 갈등 상황을 파악하고 시민갈등관리위원회에 해결을 의뢰하는 점에서 갈등을 공적 영역이 아닌 민간의 전문가주의에 기대어 해결할 소지가 있다.

지도자라면 여론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여론으로부터 환호받기 위해 정견과 공약을 손쉽게 바꾸는 아첨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공론화위원회·시민갈등관리위원회 구성은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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