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PC통신으로 알게 된 남녀의 사랑 얘기
'Pale Blue Eyes'의 마력OST 80만장이나 팔려
바흐의 미뉴에트를 편곡한'A Lover's…'엔딩곡으로

그때에도 사랑이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땐 이런 사랑을 했었다'라고 외치고 싶다. 배우 한석규·전도연이 만들어 낸 1990년대식 사랑 이야기가 무척이나 아련하다. 이러한 설렘과 아련함은 뛰어난 OST 덕분에 더욱 그 빛을 발한다. 국내 멜로영화 명작 <접속> 이야기다.

라디오 방송 PD인 동현(한석규). 그는 아픈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남자다. 늘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만나고 싶어한다. 새로운 사랑을 하기엔, 아직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크다. 케이블 TV 전화상담사인 수현(전도연). 그녀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일면식도 없는 고객에게도 온 힘을 다하는 그녀이기에 이미 친구의 애인인 사랑하는 기철을 뺏을 용기가 없다.

어느 날, 방송국으로 배달된 낡은 LP를 받은 동현은 그날 프로그램을 바꾸면서까지 그 음반을 튼다. 기철과 친구를 피해 밤 드라이브를 하던 수현은 그 음악을 듣게 되고, 우연히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게 되면서 매료되어 버린다. 방송국에 다시 신청곡으로 접수되자 동현은 사랑하던 그녀이거나 그녀를 아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고, 수현에게 인터넷접속을 통해 접근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통신(접속)을 통해 서로 알아가고,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현실적인 충고도 아끼지 않으며 친밀해져 가는 두 사람. 드디어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다. 하지만 옛사랑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동현.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한 동현으로 인하여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LP가게를 스쳐 지나가는 두 주인공,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영화 스틸컷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호주 이민을 결심한 동현. 그녀는 받지 않는 전화기에 녹음을 남긴다. 극장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호주로 가기 전에 동현이 수현에게 우편으로 보낸 그 음반을 들고서 말이다. 떠나기 하루 전에야 녹음을 들은 동현은 극장으로 달려가고, 극장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하지만 모른 척 그녀를 바라볼 수 있는 2층 카페로 올라간다. 밤이 늦도록 기다리는 그녀, 과연 그들은 만날 수 있을까?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동안 계속해서 언급한 그 곡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에서 너무나 주요하게 사용되었기에 클래식은 아니지만 이야기하려 한다. 바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그룹의 '창백한 푸른 눈동자(Pale Blue Eyes)'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우울한 분위기에 너무나 어울리는 선곡임이 틀림없다.

가사 또한 어떠한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고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아른거린다고 노래한다. 동현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옛사랑에 매달려 있고, 수현은 손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그녀의 것이 될 수 없는 아픈 사랑을 하고 있다.

끝내 만난 두 사람,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가 흐른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을 위하여 쓴 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의 내용과 맞아 있다. 1960년대 중후반 활동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록을 구현하였으며, 롤링스톤스가 뽑은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100선에 뽑히기도 한 그룹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와 함께 영화를 관통하며 흐르는 친숙한 선율이 있다. 바로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미뉴에트 G장조이다.

미뉴에트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무곡의 형식으로 4분의 3박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얼핏 왈츠와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으나 좀 더 분절적이고 아기자기하다.

보케리니·하이든·모차르트 이외에도 위대한 작곡가들이 미뉴에트 형식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다. 왠지 엄숙할 것만 같은 베토벤의 미뉴에트도 유명하다. 영화에 사용된 바흐의 미뉴에트는 1권과 2권으로 나누어진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음악노트> 가운데 2권에 있는 곡으로서 피아노 전신인 쳄발로를 위한 작품이다.

그럼 안나 막달레나는 누구인가? 바로 바흐의 두 번째 부인 이름이다. 첫 번째 부인을 잃은 그는 20대 초반의 젊은 부인을 얻게 되고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노트'라는 제목처럼 연습곡 형태의 짧은 소품적인 성격을 띠는 곡으로 안나를 위한 피아노 교본으로 쓰였는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음악 편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후자로 생각하는 편이 좀 더 낭만적일 것이다.

영화에서 쳄발로 연주의 원곡이 짧게 쓰이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흐르는 선율은 재즈 편곡의 연주이다. 쳄발로가 아닌 기타와 피아노 연주로 은은하게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OST에는 '사랑의 송가'와 '해피엔드 & 여인2'라는 제목의 트랙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곡이 사용된 최고의 장면은 바로 영화 마지막 장면이다. 바로 여성 재즈 싱어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

동현을 기다리던 수현은 기다림을 포기하고 마지막 전화를 걸기 위해 동현이 앉아 있는 카페로 들어온다. '창백한 푸른 눈동자'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수현은 받지 않는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한다.

"언젠가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죠. 이젠 그 말 믿지 않을래요. 오늘 당신을 만나 이 음악을 함께 듣고 싶었어요."

전화를 끊은 수현은 힘없이 거리로 나간다. 이때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동현. 지금부터 아무런 대사도 없다. 서로 바라볼 뿐이고 카메라는 둘의 웃는 모습을 그려 낸다. 사라 본은 애처롭고도 짧은 바이올린 선율 후 힘차게 울리는 드럼 소리와 함께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영화를 지배하던 잿빛 분위기는 'A Lover's Concerto'가 흐르는 가운데 결말을 본다. 슬픈 사운드로 편곡된 바흐의 미뉴에트가 사랑의 찬가로 바뀐 것이다.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볼 것을 음악으로 보여줬다고 하겠다.

한가지 언급하자면 이 곡은 영화 <홀랜드 오퍼스>에서도 사용된다. 음악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교육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홀랜드. 클래식에 따분해하는 학생들에게 좀 더 친밀하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수업에서 이 곡을 사용한다. 덧붙여 '조선의 4번 타자'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의 응원가이기도 하다.

영화 <접속>은 뛰어난 영화적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OST에서도 명반을 탄생시켰다. 재즈로 편곡된 바흐의 곡이 아름답고, 앞서 언급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사라 본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 그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한국영화 OST 최초로 미국 스튜디오 현지 녹음이 이루어졌으며, 영화가 개봉한 이후 판매량 80만 장을 올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OST가 안고 있는 최고 장점은 젊은 시절 한석규·전도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 목소리와 함께, 또는 독백과 같은 대사가 끝난 후 흘러나오는 음악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장면들을 기억하게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진짜 OST 아닌가.

용기를 내어 방송국을 찾아간 수현, 하지만 동현이 곧 호주로 떠날 거라는 소식만 들은 채 지하철을 탄다. 바로 앞에 동현이 앉아 있지만 그가 동현인지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이젠 다시 혼자가 될 준비를 하는 수현. 이때 말을 심하게 더듬는 한 젊은이가 옆 칸에서 넘어와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시작한다.

'저는 어릴 적부터 말을 더듬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용기를 내어 말하는 걸 연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도 사귀고 싶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시민기자 심광도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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