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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보는 눈] (2) 부처와 보살

지나친 석가모니 신격화에 반기, 누구나 '부처'될 수 있다는 사고
조각상에서도 격을 달리해 표현, 불상 '무소유'로 옷 한 벌만 걸쳐
보살, 목걸이 등 장식으로 존재감

최형균(LH 총무고객처) talktalk@lh.or.kr 2018년 08월 06일 월요일

"석가모니 부처상 앞에서 합장배례한 담징은 염주알처럼 아침이슬이 처마를 굴러내리는 대웅전을 뒤로하고 조국 고구려로 향했다."

지난 번 필자가 던졌던 질문의 답은 이러하다.

지난 회에는 절집의 명칭과 모시는 주인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대웅전엔 석가모니불, 무량수전엔 아미타불, 관음전엔 관세음보살 등등…. 그런데 막상 절집 안에서 불상 하나만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세 분, 많으면 다섯, 일곱 분이 있기도 한다. 그러면 필자가 연재 첫 회부터 거짓을 말했던 것인가? 당연히 아니고 그 이유는 절집에는 불상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상도 있다. 그럼 보살은 무엇일까?

◇불교의 역사와 부처·보살

부처와 보살을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아주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부처는 완전히 깨달음에 이른 존재이고 보살은 부처가 될 수 있으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아직 세상에 남아서 중생들을 굽어살피는 존재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워낙 세파에 찌들어서 그런지 '왜 성불할 수 있는데 안하고 있는 걸까?' 그러면 '부처가 되면 중생을 구제하지 못하는 건가?'라는 불경스러운 생각이 든다. 조금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살짝만 더 들어가보자.

석가모니가 처음 깨달음을 얻고 설법하던 시대의 불교를 '원시불교'라 한다. 그리고 석가모니가 입적하신 후 여러 종파로 갈리는 '부파불교' 시대로 접어드는데 이 시기에 결집(結集)이 이루어졌다. 석가모니 생전에는 설법을 기록한 것이 없어서 기억을 더듬어 책으로 옮긴 작업이 결집이다. 석가모니의 수제자 아난(阿難)은 잘 듣고 기억력이 뛰어나서 이 과정의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말을 담은 불경은 공자왈 맹자왈이 아니라 여시아문(如是我聞·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을 경장(經藏)이라 한다. 또 교단의 계율을 모은 경전들은 율장(律藏)이라 부른다. 여기에 경장에 대한 해설서인 논장(論藏)을 더해 불교 3장(三藏)이라 하는데 서유기로 유명한 삼장법사의 그 삼장이다. 이 삼장이 부파불교시대에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불교는 지나치게 경장에 대한 공부, 정밀한 교의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면서 대중들의 접근이 힘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또 성격 자체가 엄격한 율법을 바탕으로 자신의 수행에만 치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직 석가모니만 부처로 인정했고 사람들은 그냥 사람일 뿐,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아라한(阿羅漢)으로 설정했다. 이건 석가모니를 존중하다 보니 나온 현상이지만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라한이 될 수 있는 사람도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지나친 석가모니 신격화의 부작용이었다.

◇혁명적 패러다임 전환의 산물 '보살'

이런 상황에 새로운 불교집단이 반기를 들면서 내세운 개념이 보살이다. 보살의 원래 말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인데 이 말은 '깨달음'을 의미하는 Bodhi(보리심의 보제(菩提)를 생각하면 된다)와 '살아있는 존재'를 뜻하는 Sattva가 합쳐진 것이다. 이 용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 보리살타(菩提薩陀), 이걸 다시 우리가 줄여서 보살로 부르고 있다. 당시 개혁가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보살임을 선언했고, 나아가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혁명적 사고의 전환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불교를 대승(大乘·위대한 수레)이라 하고 기존 아라한 중심의 부파불교를 소승(小乘·작은 수레)이라고 규정했다.

사진1 - 석조보살입상.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상 하나를 보자(사진1).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살상이다. 이 상은 석가모니가 아직 속세의 사람이던 태자(太子) 시절을 묘사한 조각상이다. 그래서 불상이 아니라 보살상이다. 부처가 아닌 석가모니 상이라니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이는 석가모니도 부처가 아니라 보살이었던 적이 있고, 보살의 기본은 깨달음을 원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조각상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누구나 보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웅변하는 보살상이다. 그래서 이런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절의 일반적 인사말도 '성불하십시오'가 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가지고 있고,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면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고,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보살이란 개념은 아주 많은 변화를 보인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절에 다니는 여성신도를 칭하는 용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장보살처럼 지옥의 중생이 모두 구제받을 때까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는 분도 있는 것을 봐서는 처음에 말한 부처가 될 수 있으나 부처가 되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현세에서 노력하는 분이라는 말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살의 근본은 지금까지 필자가 말한 대로 혁명적 패러다임 전환의 산물임을 알았으면 한다.

사진2 - 진주 청곡사 대웅전 삼존불. /최형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럼 이런 존재는 어떻게 조각상으로 나타날까? 아무래도 부처와 격을 달리해서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불상은 간단히 옷 한 벌만 걸치고 있다. 무소유를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깨달으신 분들이 세속적 욕심의 산물을 가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에 비해 보살들은 보관을 쓰거나, 목걸이, 화려한 법의 등으로 장식해서 그 존재감을 뽐내는 존재로 표현된다. 이제 진주 청곡사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을 보자(사진2). 가운데 분과 좌우에 계신 두 분의 모습이 다름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이게 부처와 보살의 차이이다. 이런 경우 가운데 부처를 본존불, 좌우로 있는 보살을 협시보살이라 한다.

다음에는 사진의 불상(사진3)이 석가불인지, 아미타불인지 아니면 다른 부처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사진3 - 석굴암 본존불. /문화재청

지난번 첫 회가 나가고 몇몇 분들에게서 질문이 들어왔다. 그중의 하나만 공유해본다. 필자가 넣은 사진을 잘 살펴보면 현판이 대웅전이 아니라 대웅보전이라고 되어 있다. 대웅전과 대웅보전은 서로 다른 것 아니냐는 질문인데, 참으로 눈썰미 좋은 분이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큰 차이는 없다. '보(寶)' 자는 수식어다. 우리 절의 대웅전은 특별한 곳이라는 강조를 하고 싶을 때 대웅보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원통전은 원통보전, 극락전도 극락보전이 될 수 있다.

이런 질문을 받고 느낀 바가 있어서 이번 회 부터는 글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이 생기거나 혹시라도 필자가 잘못 말한 것이 있을 수 있으니 상호 대화가 가능한 이메일 채널을 하나 만들었다. 계정은 talktalk@lh.or.kr이다. 서로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talktalk(톡톡)으로 만들었으니 많이 활용해 주시길 당부드린다.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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