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현실 풀어낸 소설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토록 해준다. 중심가는 아니지만 한적하고 공기 좋은 도심 외곽에 공동주택을 지어, 입주 가족들에게 그저 '화목하게 살면 된다'고 한다.

물론 조건이 있다. 공동주택에 사는 동안 '자녀 셋'을 낳아야 한다.

가히 충격적이다. 그런데 일어날 수 있겠다 싶다. '대한민국 출산지도'까지 만드는 우리나라 출산장려정책을 기어이 높이 산다면 말이다.

소설 <네 이웃의 식탁>은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자녀 셋을 낳아야 하는 곳. 평균 정도의 연봉과 보통의 직업을 둔 이들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주했다.

소설은 식탁으로 시작해 식탁으로 끝난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 한편에 자리 잡은 거대한 핸드메이드 원목식탁. 아주 가까이 앉는 게 개의치 않다면 어른 열여섯 명가량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은 소설에서 중요한 오브제로 작용한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어야 하는 곳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

새롭게 지어진 공동주택에서 입주민들은 이웃이라며 속사정을 하나둘 내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막 이사를 온 전은오·서요진 부부도 자연스레 합류하게 되고, 아내 요진은 이름 모를 이물감을 계속 느끼지만 이미 형성된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용납하며 지낸다. 신재강·홍단희 부부의 추진력으로 공동육아가 시작되고 부부 4쌍의 아내들은 저마다 요리, 놀이 등을 담당한다.

소설은 아내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기농인지 꼼꼼하게 따지며 아이들을 돌보는 단희는 프리랜서로 동화책 그림을 그리는 송상낙의 아내 조효내의 게으름과 성의없음을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효내는 수유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으며 양보할 수 없는 성취감과 현시욕의 일부를 채운다.

팍팍한 살림에 온라인 중고사이트를 섭렵한 고여산 아내 강교원은 아이들이 입은 옷의 브랜드로 사람들을 판단한다.

<네 이웃의 식탁>은 '돌봄'과 '공동육아'가 얼마나 이상적인 단어인지 보여준다.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이름 모를 폭력을 은근히 드러낸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내 넷은 모두 안쓰럽다. 단희는 엄마란 자신이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마땅한 존재라고 말하고, 교원은 스스로마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끝이라는 절박감에 살림과 육아를 더욱 밀도 있게 사수하는 데 골몰한다. 인터넷상에서 거지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요진은 신재강으로부터 도 넘은 친절과 거북한 농담을 느끼면서도 이웃집 아내의 도리를 지키느라 감내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이가 있는 만큼 완전한 난파선이 아니라고 자위한다.

효내는 프리랜서가 언제라도 내킬 때 일하고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시어머니에게 들으며 매일 무기력함과 만성피로를 느끼며 일과 육아를 모두 해내고 있다.

또 공동육아라는 가식 속에서 아이들도 상처를 입는다. 요진의 딸 시율은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짐을 진다. 요진은 그저 집에 가고 싶다는 시율의 말에서 공동육아의 허위, 공동체 돌봄이라는 허상에서 깨어난다.

육아를 숭고한 과정이라고 주입시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웃집 아내를 희롱하는 남자, 뇌 구조가 다르니 육아와 집안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남편들이 참 가소롭다.

자신의 존재는 날마다 조금씩 밑그림으로 위치 지어지고 끝내는 지우개로 지워지더라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수많은 여성. 따듯한 이웃과 아름다운 자연이 그저 허무할 따름이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의 목표인 자녀 셋은 사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은 일하지 말고 집에서 양육에 전념하라는 뜻과 다름없다.

작가가 환멸과 절망을 가지고 썼다는 <네 이웃의 식탁>.

나는 당신의 식탁을 알고 싶지 않다.

191쪽. 민음사 펴냄.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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