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주의 명암부터, 공동체 정신까지

<햄스테드(Hampstead)>(감독 조엘 홉킨스·영국)는 로맨스 영화라고 불린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 노년을 맞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며 자신의 못난 구석을 들여다보고 조금씩 변한다는 내용이다. 극적인 장치와 화려한 기술이 덜하고 보는 재미를 더하는 핫한 배우가 나오지 않는 영화지만, 곱씹을만한 메시지가 여러 개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주인공 에밀리(배우 다이앤 키튼)와 도널드(배우 브렌던 글리슨)는 인생 후반부를 산다. 에밀리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 영국 햄스테드의 고급 빌라에서 지내며 자선단체 상점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도널드는 햄스테드의 히스 숲에서 오두막을 짓고 산다. 사회에서 '홈리스'라고 분류되지만, 채소를 기르고 태양광 전기를 쓰며 누구에게도(자연에도) 피해 주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어느 날 에밀리는 우연히 망원경으로 숲을 보다 오두막을 발견한다. 도널드가 누군가로부터 해를 입는 장면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해 그를 돕는다. 이후 둘은 친구에서 연인이 된다.

에밀리와 도널드는 서로 다른 인생 여정을 걸어왔다. 고급 빌라와 오두막이 이를 상징한다. 주거 공간의 차이만큼 사고방식과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르다.

이는 사랑한다고 해서 곧바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는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서로에게 뛰어드는 하이틴 로맨스가 아니다.

에밀리와 도널드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각자의 사생활을 세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의 과거를 알 수 없다. 다만 둘의 대화로 짐작할 수 있다. 둘이 처음으로 저녁을 함께 먹던 날, 도널드는 에밀리에게 누구랑 뭐하면서 지내는지 묻는다.

에밀리는 친구들이랑 어울린다고 했다. '공식적인' 친구들.

이에 도널드는 말한다. 원치 않는 사람과 어울리고 생계형 직업이 없고 삶에 자부심도 없어 보인다고.

<햄스테드> 스틸컷.

맞다. 에밀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그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또 그가 남긴 빚더미를 안고 어떻게 할 줄 몰라 불편하지만 지인의 도움을 받는다. 이제껏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해보지 못한 아내이자 엄마였다.

반면 도널드는 세상과 단절해 살고 있다. 에밀리가 없었다면 그는 여전히 홀로 숲 속에서 살 것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벌이다. 사랑했던 연인을 버린 죄책감에 마음의 문을 닫았다.

스스로 "세상은 내가 사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며 타인의 호의와 도움을 거칠게 거부하는 도널드.

영화 후반부 이들은 달라진다.

<햄스테드> 스틸컷.

에밀리는 외면했던 현실을 받아들이고 빌라를 처분한다. 재정적으로 독립한 것이다. 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에게 남편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라고 충고까지 한다.

도널드는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외쳐도 세상은 듣지 못한다는 에밀리의 말을 듣고서 도움을 청한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요"라고 용기를 낸다.

삶에 대한 철학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지만, 어느새 자기식대로 늙어버린 둘을 바라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꾸 되묻게 된다.

◇당신만의 집이 있나요?

도널드가 용기를 낸 이유는 집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오두막은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땅의 소유주인 건설사는 흉물스러운 낡은 병원을 치워버리고 고급아파트를 지으려고 도널드에게 퇴거명령을 내린다. 그는 그저 무시해버리고 만다. 이때 에밀리가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오두막을 지키자는 포스터를 만들어 거리에 붙이고 시민들과 연대하려고 한다.

오두막 건너편에 사는 '부르주아' 주민들은 숲이 개발되길 원한다.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중산층의 욕망이 그대로 표출된다.

도널드는 버려진 가구로 집을 짓고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개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재개발을 반대한다. 도널드를 돕는 에밀리도 재개발에 반기를 든 셈이다.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묘지는 이에 대한 복선이다. 영화 중간 카를 마르크스의 묘가 등장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묘비명이 뚜렷하게 보인다.

<햄스테드> 스틸컷.

도널드가 재판 끝에 자신이 17년간 오두막집에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때 많은 시민이 함께 환호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말처럼 단결의 힘을 보여준다.

<햄스테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화의 주인공 헨리 할로스는 햄스테드 숲 속에 17년간 은둔하다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 공방을 벌였고 당시 3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인정받았다. 영국은 한 곳에서 12년 이상 거주하면 점유권을 인정한다.

헨리 할로스는 전 재산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도널드는 오두막을 배로 만들어 숲을 떠난다. 그러곤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에밀리와 재회한다.

둘은 서로 '집'을 포기할 수 없어 헤어졌었다.

과연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재판장에서 자신에게 집이 전부라고 말하는 도널드와 빌라를 떠나서야 홀로 우뚝 선 에밀리.

<햄스테드> 스틸컷.

고요하고 조용한 묘비에서 먹는 와인 한잔에 행복해하는 둘을 보노라면, 결국 우리는 훗날 아주 조그마한 공간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간단한 줄거리처럼 보이지만 전혀 간단하지 않은 영화 <햄스테드>. 공존, 공동체, 개발, 고령화, 죽음 등 다양하게 읽을 수 있겠다.

영화는 3일 오전 9시 50분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이 밖에 온라인에서 구매해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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