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는 하키 감독

김윤동(50) 김해시청 하키 감독은 김해가 대한민국 하키의 중심지로 선 과정에 대한 산 증인이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한 그는 부모님의 반대로 그만뒀다. 김해서중에 진학했지만 운동 감각은 여전해 체육 시간에 축구 하는 모습을 본 체육 선생님 권유로 하키에 입문했다. 그게 중2 때였고 창단 멤버였다. 이후 김해고, 동의대를 거쳐 상무에서 군 생활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해시청 하키팀이 창단되면서 주장 겸 플레잉코치로 김해 하키 인생을 이어갔다. 각종 국제대회 때 코칭스텝으로도 참가했고 협회에서 여러 보직을 맡기도 했지만 김해시청 원클럽맨으로 지금까지 하키 인생을 살고 있다.

차 사랑 하키 사랑 

김해국제하키장에 있는 경남하키협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하키 인생 이야기를 듣고자 했지만, 웬걸. 차와 택견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무실에는 한눈에 봐도 탐나게,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주로 보이차와 홍차를 즐긴다고 했는데 인터뷰하는 날에는 발효연잎차로 둘이서 물 2리터 정도를 나눠 마셨다.

중국에서 차를 접했다는 그는 한국식의 엄격한 다도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자유분방하다고 해야 할까 파격이라고 해야 할까. 거침이 없었다. 팔팔 끓인 물을 그대로 다호에 바로 따르기도 하고 유리 다완에 차를 따르면서 옆으로 흘러내리는 차를 아까워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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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동 경남하키협회 전무. / 정성인 기자

"2009년 중국 광둥성 하키팀 감독으로 가서 실제 지도한 기간이 7~8개월로 짧았지만 차를 알고 온 게 정말 큰 성과입니다."

중국은 우리나라로 치면 전국체전이 매년 열리지 않고 4년에 한 번 열린다. IOC가 주최하는 올림픽과는 달리 중국 내에서는 이 전국체전을 올림픽이라고 부르며, 성 대항으로 열리는 여기서 성적을 굉장히 중시한다. 이 대회를 위해 종목별로 외국인 감독을 초빙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김 감독은 2001년에도 중국 료녕성 팀 객원 코치로 두 달 정도 있으면서 중국 경험은 있었지만 2009년 차와 인연이 맺어진 것.

차를 알고 나니 모든 게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차를 선물 받으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몰라 놔뒀다가 오래되면 버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좋은 차가 있으면 지인들과 나눠마시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차를 구하겠다고 무리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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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하키협회 사무실에 차려진 차실. / 정성인 기자

그는 왜 차를 마실까?

"중국에 있을 때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처음은 좋지만 끝에는 싸우기 일쑤다. 하지만 차를 마시면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그래요. 여기 이렇게 차를 마실 수 있게 차려놓고 후배들과 차를 마시며 하키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인생에 관해서도 얘기하면서 김해시청 하키팀이 전국 어느 팀에 견줘도 밀리지 않을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만들어가는 거죠."

사실 차를 마신다는 건 많이 번거로운 일이다. 인스턴트커피처럼 금방 타서 마시면 되는 게 아니라 마시기까지 과정이 길다. 그만큼 고양된 감정을 다스릴 시간을 벌게 된다.

택견 고수?

김 감독이 팀을 이끄는 한 축이 차라면 다른 한 축은 택견이다.

의외였다. 그냥 별 의미 없이 '건강 관리하려고 다른 운동 하는 것 없나'라고 물었을 뿐인데, 정말 '헉'이었다.

택견 유단자였다. 현재 4단이고 5단 승단을 위해 논문 심사까지 통과했지만 마지막 합숙훈련에 참가할 시간을 내지 못해 단증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2012년 하키 국가대표 감독하면서 대한하키협회에서 이사로 여러 역할을 맡다 보니 도저히 수련할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지금까지 개인 수련은 못 하고 있네요. 몸이 많이 굳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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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드하키 경기 모습. 사진은 2014년 제95회 전국체육대회 남자고등부 경남(김해고)과 전남(담양공고)의 경기 때이다. /경남도민일보DB

그런 그지만 인제대에서 교양체육으로 택견을 가르치기도 했다.

"저는 전통적인 걸 좋아해요. 대학 때 우연히 택견을 접했어요. 춤도 아닌 것이 무예도 아닌 것이 인상에 깊이 남았죠. 하지만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택견이 삶 속으로 들어온 건 30줄이 되고서였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서 건강에 관심이 갔죠. 하키라는 게 단체 종목이다 보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거고, 나중에 나 혼자서 건강을 위해 할 종목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한참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때 봤던 택견이 떠올랐고, 해보자 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택견 사랑'은 질겼다. 경남에서는 체급 우승을 예사로 차지했고 경남 대표로 전국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택견은 '외도'가 아니다.

"택견 하시는 분들 마인드가 너무 좋아요. 본인 스스로가 정말 겸손합니다. 하지만 수련에서는 그렇게 치열하고 철저할 수 없어요. 모든 스포츠가 유사한 부분이 많잖아요. 그런 점을 시청 하키팀에 접목하려고 했고, 성과도 거두고 있습니다."

김해를 넘어 경남 하키 진흥을 위해

그가 지금 공식적으로 맡은 직책은 두 개다. 김해시청 감독과 경남하키협회 전무이사. 어떤 일이 더 중요할까? 차이가 없는 듯했다.

지난 5월 충북 제천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김해여중은 온양한울중에 2-0으로 패하면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운영 미숙과 오심으로 어린 소녀들이 눈이 부어오를 정도로 펑펑 우는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한국계로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류시우(김해여중 2)였다.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하키를 하면서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이런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김 감독이 큰 힘을 쏟고 있다.

7월 20일 김 감독 인터뷰를 하고 사진 촬영을 위해 필드로 나섰을 때 내가 온 줄을 알고는 맨발로 뛰어나와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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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동 경남하키협회 전무. / 정성인 기자

"필드하키가 우리나라에서만 인기가 없어요. 유럽 선진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종목입니다.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귀족 스포츠예요. 영국 연방 국가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호주에서는 학교마다 서너개 스포츠 클럽이 있는데 하키가 없는 학교는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65세 이상 팀이 운영되고 있다니까요."

세태가 그러니 누구 없이 '돈'을 따진다. 운동을 해서 장래 희망이 있는 종목은 초·중학교에서부터 운동을 시작하지만, 한국에서 하키는 그런 인기 종목이 아니다. 어떻게 선수를 확충할까?

"하키는 선수가 몇 안 돼요. 우리나라 중학교부터 일반부까지 팀이 80팀이고, 선수는 1300여 명에 불과합니다. 실업팀에 가면 연봉 4000만 원은 기본으로 보장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국제적인 인맥 형성에 큰 기여를 한다는 겁니다."

요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유학을 예사로 생각하는데, 하키를 배워서 해외로 나가면 인맥 형성과 현지 문화를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흔히 유럽은 축구가 굉장히 활성화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필드하키 역시 축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김 감독에게 하키가 왜 좋은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하키, 승마, 럭비 이런 게 선진국형 스포츠입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을 할 때가 됐습니다. 하키는 많은 사람이 하는 운동이 아니라 선택된 사람들만 할 수 있다는 희소성이 있습니다. 고급 스포츠죠. 그리고 기구를 들고 하는 운동이라서 인격 수양이 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기구를 들고 하기 때문에 모든 감각이 발달하고 판단력이라든지 두뇌적인 플레이를 많이 한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중학교부터 일반부까지 하키 선수 육성 시스템이 구축된 김해. 김해국제하키장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규격을 갖추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김윤동 감독이 앞으로 펼쳐갈 경남 하키, 더 넘어서 한국 하키 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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