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에도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의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건축주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건축사나 건설회사를 찾아간다. 건축사는 건축주의 취향과 의사를 반영해 건축물을 설계한다. 행정적 절차가 끝나면 건설회사는 설계 도면을 가지고 시공을 진행한다. 건축사는 건설회사가 설계 구도에 따라 시공을 잘 진행하고 있는지 현장에 나가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된다. 이처럼 건축사는 건축물의 설계 및 공사 감리(관리·감독)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기술자를 말한다. 이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업무를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창원에서 소마E&C건축사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김태호(54) 건축사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건축사가 되기까지

소마E&C건축사사무소는 창원시 중앙동 한 건물에 위치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 삼삼오오 모여 회의를 하는 직원들 등 사무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한 직원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직원은 나를 김태호 건축사 자리로 안내했다. 인사를 나눈 후 김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물어봤다.

"고향은 경남 진주입니다. 초·중·고를 무난히 보내고 대학 진학을 앞두게 됐습니다. 저는 성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음악을 전공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어요. 졸업 후의 미래도 그렇고 집안 형편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다 경상대학교 건축과로 갔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진주에 있는 한 건축사사무소에 취직해 1년을 보냈다. 사실 김 씨는 대학생 때부터 서울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결국 창원에 있는 한 건축사사무소로 오게 됐다.

"그때가 1990년 4월입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당시 경남에서 제일 큰 건축사사무소였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주택 200만 호 건설'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많이 했어요. 정말 주위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엎어져서 일만 했습니다. 건축사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5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또 5년의 실무경험이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보낸 후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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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호 건축사. / 박성훈 기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건축학과를 가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갈래로 나뉘게 된다. 설계나 도면을 담당하는 건축사가 되기 위해서는 건축학을, 건축물을 직접적으로 짓는 시공을 하려면 건축공학을 전공하면 된다고 한다. 김 씨에게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구분 없이 '건축공학과'였습니다. 졸업할 때 건축사로서 설계를 하느냐 건설회사에서 시공이냐를 선택하는 형태였죠. 현재는 학부로 되면서 건축학과 건축공학과 이 두 개로 나뉩니다. 즉 입학할 때부터 결정을 해야 하는 형태죠. 건축과는 5년제이고 건축공학은 4년제입니다."

창원시건축사회장 그리고 경남건축사회장 선거

우리나라 건축사협회 최고 상위 기관은 대한건축사협회다. 그 밑에 17개 시·도 건축사회가 있다. 경남은 '경남건축사회'가 되겠다. 경남건축사회 예하에는 또 18개 시·군 건축사회가 있다. 김 씨는 지난 2013~14년 통합창원시건축사회장을 역임했다.

"건축사의 모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창원시가 통합되기 전에는 창원건축사회, 마산건축사회, 진해건축사회까지 총 3개가 있었습니다. 2010년 통합이 되면서 '통합창원시건축사회(이하 창원시건축사회)'가 만들어졌죠. 제가 2대 회장을 지냈습니다."

지난 2014년 창원시 의창구 용지호수공원에 친환경 건축물 '창원 C-zero House'(탄소제로하우스)가 들어섰다. 이는 창원시가 '미래에는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건축물만 짓자'라는 취지에서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친환경 주택 시범건축물을 지은 것이다. C-zero House는 지상 1층 규모로 만들어졌다. 30여 가지 친환경 관련 건축 기술이 적용됐다. 김태호 건축사는 당시 창원시건축사회장으로서 이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C-zero House는 친환경 건축물입니다. 에너지 절약은 물론이고 폐기물도 최소로 발생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창원시에 먼저 제의를 했습니다. 환경적인 부분을 생각한다면 미래에는 이러한 건축물이 많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위치 선정도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처음에는 '공원에다 그런 걸 왜 만드냐'고 주변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짓고 나자 많은 시민들이 C-zero House를 찾았습니다. 친환경 주택에 관심 있는 창원시민이라면 누구나 가셔서 보시면 됩니다."

지난 3월 제30대 경남건축사회장 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 김 씨도 후보로 나섰다. 김재석 건축사와 경합을 벌였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회장이 된다고 해서 따로 월급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순수하게 회원들에 대한 봉사, 협회의 권리를 찾는 게 주 업무입니다. 창원건축사회장을 해보니까 그런 일들이 적성에 맞더라고요. 경남건축사회도 제대로 이끌어보고 싶어서 도전을 했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많이 아쉬웠어요. 임기가 3년입니다. 협회 회원님들이 도와준다면 3년 뒤에 다시 도전할 마음은 있습니다."

건축주의 배려

인터뷰 도중 '감리'라는 용어가 계속해서 나왔다. 설계, 도면, 시공 등은 정확한 뜻은 몰라도 자주 들어본 단어였지만 감리는 그렇지 않았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김 씨는 설계와 감리가 건축사의 고유 업무라고 했다.

"앞서 말했듯이 건축사가 설계 도면을 작성해서 건설회사에 넘기지 않습니까. 그럼 건설회사는 도면을 보고 시공을 하는데요. 경비 절감을 위해서 자재 등을 저렴한 걸 선택할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흔히 말하는 부실공사가 되는 거죠. 감리란 그걸 방지하기 위해 건축사가 정확히 시공이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설계 구도가 잘 구현되고 있는지, 골조공사를 할 때는 제대로 품질을 확보하고 있는지 등을 관리·감독합니다."

김 씨가 건축업을 시작한 지도 어언 30여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었을까. 건축사로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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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마E&C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한 경남국제외국인학교, / 김태호 씨 제공

"건축사로서 설계 도면을 그리려면 최소 10년이 걸립니다. 창조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여야 하죠. 이런 노력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부족하죠. 건물을 의뢰할 때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려달라는 건축주들이 있어요. 물론 최대한 건축주의 취향과 의사를 반영해야 하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도 있거든요. 지금까지 '하고 싶은 대로 설계를 해달라'고 말씀하는 건축주를 딱 두 분 만나봤습니다. 그분들은 건축사의 노력을 인정하고 배려를 해주신 거죠. 그렇게 상호 간에 신뢰가 쌓이면 더 좋은 건축물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

최근 건설업계의 체감경기가 악화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건설업계의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한 극복 방안이 있는지 물어봤다.

"건축사들이 수입이 넉넉하면 직원들에게 많은 연봉을 줄 수가 있습니다. 수입이 넉넉하려면 설계비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결국 그 부담은 건축주가 지게 됩니다. 거기서 발생되는 괴리감이 있죠. 또 앞으로 정부 시책에 따라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건축설계 기간이 늘어납니다. 건축주는 항상 '빨리빨리'를 요구하지만 설계라는 게 벼락치기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건축사는 건축주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시간적인 배려가 완성도 높은 건물을 완성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무엇보다 상호 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건축 철학

건축사는 건축물을 설계할 때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담는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과도 같다. 김 씨만의 건축 철학은 무엇이냐고 묻자 '인문학'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건축에도 반드시 인문학이 들어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 없는 건축은 깊이가 없는 건축이라고 볼 수 있죠. 외부 디자인이 좋은 건축물? 좋죠. 깔끔하고 심플하고 스마트하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외부 디자인만 좋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진짜 만족하고 편리함을 느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건축물은 물건처럼 단편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품을 들이고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거거든요. 인문학을 공부한 건축사가 설계한 건축물을 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개인의 취향, 식생활, 문화 등을 충분히 계산하고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거죠. 그래서 저는 건축을 공부한다면 인문학을 꼭 병행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건축 분야에서는 자녀들이 업을 잇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김 씨의 자녀들은 모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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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마E&C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한 합천 한우브랜드타운. / 김태호 씨 제공

"딸이 두 명 있는데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큰딸이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어요. 저는 그때 '이 길을 선택하겠다고 하면 반대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결정은 반드시 스스로하고 후회는 하지 마라'고 말했죠. 결국 다른 직업을 선택했지만 진짜 건축 관련된 일을 한다고 했었어도 반대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건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건축업계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김 씨는 다른 무엇보다 '행복감'을 강조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성실히 하면 된다고 했는데요. 그건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합니다. 설계가 됐던 시공이 됐던 일을 할 때 행복하지 않다면 빨리 직업을 바꾸는 게 좋아요. 특히 건축은 스스로가 이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 즐거운 마음으로 건축에 임하다 보면 자존감도 생길 것이고 자신만의 건축 철학이 쌓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태호 건축사에게 건축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었다. 김 씨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저에게 제일 설계하기 어려운 건축물을 말해보라면 단독주택을 꼽을 겁니다. 사실 역으로 어린 친구들이 가장 먼저 설계하는 게 단독주택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많은 고뇌가 필요합니다. 극장, 병원 등은 그 기능에만 맞으면 돼요. 외부는 그에 맞는 디자인으로 하면 되고요. 단독주택은 답이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공간을 채워야 할지 건축주는 무슨 재료를 원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겐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공간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단독주택 설계가 제일 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려워요.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가 설계한 건축물에서 건축주가 안락함을 느끼고 가족들과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그런 고뇌와 어려움쯤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건축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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