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맛보기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불볕더위, 무더위가 우리를 힘들게 했던 더위달 7월이 지나갔습니다. 아직은 덥지만 곧 가을이 우리 곁으로 올 것입니다. 가을로 들어서기 때문에 8월은 '들가을달'입니다. 이달에도 토박이말을 맛보시며 즐겁게 보내시기를 비손합니다.

쌉싸래하다

뜻: 조금 쓴 맛이 있는 듯하다.

밝날(일요일)로 날이 바뀐 뒤에야 집에 닿아서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잠결에 구수한 된장국 냄새를 맡고 잠이 깼습니다. 일어나서 보니 된장국, 깻잎, 갈치속젓과 같은 입맛을 당기는 것들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돼서 그런지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입맛이 그래서인지 깻잎에서 쌉싸래한 맛이 많이 났습니다.

된장국을 몇 숟가락 떠서 먹고 나니 입맛이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맛있는 아침을 먹고 빨래 널기와 가심을 도왔습니다. 몸을 놀리니 땀이 났습니다. 일을 끝낸 뒤 땀을 씻고 나니 몸도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줄없다

뜻: (사람이나 하는 일이)야무지거나 반듯하지(칠칠하지) 못하다.

토박이말 살리기를 하면서 듣는 물음 가운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가를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토박이말을 살리고 북돋우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며 앞장서는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를 자랑하면 오줄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더 자랑하고 싶습니다. ^^

앞으로 온 나라 사람들이 토박이말 살리기에 힘과 슬기를 보태는 날이 와서 그 모든 사람들을 자랑하느라 바쁜 제 모습을 그려봅니다.

썰썰하다

뜻: 속이 빈 것처럼 시장한(배고픈) 느낌이 있다.

어제는 아침부터 일이 꽉 짜여 있어서 쉴 겨를도 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두 가지 일을 끝내고 나니 썰썰해서 낮밥을 일찍 먹으러 갈까 싶었습니다. 여느 날 같으면 낮밥 먹을 때가 아직 멀었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제가 자리를 비우면 아무도 없어서 일을 하다가 여느 때와 같이 먹었습니다.

뒤낮(오후)에는 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아이들과 토박이말 알음알이 잔치 갖춤을 했습니다. 아이들 솜씨가 날로 늘어나는 것을 보고 놀라웠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추어올려 주었습니다. 어른들보다 나은 우리 아이들이 짜장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이 꾸릴 토박이말 알음알이 잔치가 올해는 더욱 즐거운 한마당 잔치가 될 것입니다.

썰레놓다

뜻: 안 될 일이라도 되도록 마련하다.

오란비(장마)와 한바람(태풍)이 겹쳐서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는 그렇게 많은 비가 오지 않아서 큰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작달비가 내려 어려움을 겪게 된 분들이 있다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집이 물에 잠기기도 하고 수레, 살림살이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흙이 무너져 내려 집을 덮친 곳도 있더군요. 한바람이 더 많은 아픔을 주지 않고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바람이 부는 쪽을 바꿀 힘이 제게 있으면 얼른 바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힘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 비손하고 있을 수밖에 없네요. 이렇게 '알 될 일이라도 되도록 마련하다'는 뜻을 가진 토박이말에 '썰레놓다'가 있습니다. 잘 쓰지 않아서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럴 때 쓰면 좋겠습니다.

토박이말바라기 일을 하면서 늘 하는 말이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큰 힘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일들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이룬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아이들도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일을 썰레놓을 우리 아이들을 믿고 나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

썸벅

뜻: 크고 여린 몬(물건)이 잘 드는 칼에 쉽게 싹 베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보낼 게 있어서 여느 날보다 좀 일찍 나왔습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이 꺼내 놓은 물박(수박)을 잘랐습니다. 껍질을 남기고 알맹이만 잘라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물박(수박)이 썸벅 잘리는 바람에 칼에 손을 베일 뻔했습니다. 칼 길이가 짧아서 두 쪽에서 칼을 넣어 자르다가 제 손 쪽으로 칼이 왔던 거죠.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 말보다 작은 말은 '쌈박'이고 여린 말은 '섬벅'. 센 말은 '썸뻑'입니다.

쌈지

뜻: 무엇을 담으려고 종이나 헝겊, 가죽 따위로 만든 주머니

갈배움을 마치고 아이들이 노는 것을 좀 보고 있었습니다. 끼리끼리 어울려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딱지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좀 많았습니다. 주고받는 말을 들으니 "내 파우치 못 봤어?"라고 하더군요. '파우치'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을 보고 저는 좀 놀랐습니다.

'가방'도 들온말이긴 하지만 '가방'이 '백'이라는 말에 밀려 덜 쓰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파우치'는 더 자주 쓰는 말이 되어 저처럼 놀라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되어버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쌈지'라는 토박이말이 있는데도 쓰지 않고 그런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쌈지'에는 허리에 차는 '찰쌈지', 손에 쥘 만한 크기로 옷소매나 옷주머니에 넣게 만든 '쥘쌈지'가 있지요.

'파우치'는 '쌈지'와 비슷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찰쌈지'와 '쥘쌈지'는 그대로 살려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어깨에 메는 것은 '멜쌈지'라고 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앞으로 '파우치'라는 말을 써야 할 때 토박이말 '쌈지'를 살려 쓰면 좋겠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