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계절의 맛] (4) 가지, 감자, 전통주, 갈치

입 안에서 녹는 부드러움·달큰한 맛
각 가정 다른 맛, 감자 샐러드
전통주, 잃어버린 100년을 찾아서
살살 뼈 발라 한 입… '밥도둑' 갈치

최환석 기자 che@idomin.com 입력 : 2018-08-01 13:36:02 수     노출 : 2018-08-01 13:51:00 수

가지

가지는 호불호가 꽤 갈리는 음식 재료다. 특유의 식감 때문인 듯하다. 싫어하는 사람은 질척거린다고 말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부드럽다고 말할 식감이다.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법한 장면 하나. 보온 도시락통 내부 열기 때문에 반찬이 곧잘 시금하게 변할 때가 있는데, 가지가 그날 반찬이라면 골치가 꽤 아프다. 가뜩이나 식감 때문에 손이 잘 가지 않는데, 열기로 맛까지 변질하면 먹기가 곤란하다. 물기까지 생기면 그날 점심은 반찬 구걸을 해야 할 판이다.

개인적으로 가지는 일부러 찾는 음식 재료가 아니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만인 채소였다. 최근에서야 그 맛을 이해하고 찾게 됐는데, 자주 찾는 중국 음식점에서 지삼선(地三鮮)을 알게 돼서다.

123.jpg
▲ 창원의 한 대형 할인점에서 판매하는 가지. 2~3개를 묶어 1000원대에 팔고 있다. / 최환석 기자

지삼선은 땅에서 나는 세 가지 신선한 재료를 쓴 요리라는 뜻이다. 가지, 감자, 피망을 볶거나 튀기고 양념을 하여 내는 음식이어서 먹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가지를 튀기면 호불호가 갈리는 식감은 억제되고 특유의 달큼한 맛이 배가한다. 신경 써서 먹지 않으면 감자나 고구마로 오해할 만큼 맛이 달라진다. 지삼선 요리에서 가지는 한 번 튀겨 센 불에 볶아낸다.

중국 요리 가운데 가지를 쓴 요리는 어향가지, 가지볶음 등이 있다. 요리를 함께 다루는 양꼬치 식당에 가면 대체로 지삼선이나 어향가지가 있으니 한 번 먹어보길 권한다. 집에서 마파두부를 해먹을 때 가지를 넣어보자. 나름 어울리는 조합이다.

사실 가지가 기름과 만나면 새로워진다. 기름과 함께 가지를 조리하면 불포화지방산인 리놀산과 지용성 비타민인 비타민 E 흡수율이 증가한다. 저열량 식품인 데다 식이섬유가 많아서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다.

가지 색은 보라색인데, 안토시아닌계 색소인 히아신과 나스닌 덕분. 이 둘은 혈관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안토시아닌은 세포 산화를 늦춰 노화 방지 효과도 있다.

다만, 가지를 다룰 때 '솔라닌'을 주의해야 한다. 가지 학명에서 이름을 딴 솔라닌은 적을 땐 염증을 없애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솔라닌에 중독이 되면 식중독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호흡 곤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녹색을 띠거나 싹이 난 감자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와 같다. 가지를 날로 먹으면 아린 맛이 나는데 솔라닌 때문이다.

가지는 꼭지를 없애고 깨끗하게 씻어 쓰면 된다. 물에 담가 떫은맛을 없애고 쓰면 좋다. 두고 쓰려면 실온에 보관하면 된다. 냉장 보관을 하려면 비닐봉지에 싸서 보관하면 된다. 오래 두려면 굵게 자르고 나서 소금에 절이고 물기를 제거한 후 냉동 보관하면 된다.

원산지가 인도인 가지는 한국과 더불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주로 애용한다. 중국과 일본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지를 소비하는데, 한국에서는 대체로 나물이나 무침으로 해먹는다.

가지나물을 할 때는 물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익힌 가지를 힘껏 짜면 고유 형태나 식감이 변질하기 때문에 적당한 강도로 물기를 빼야 한다. 물기를 덜 빼도 문제다. 익힐 때도 충분히 익히지 않으면 풋내가 나기 쉽다.

간단하게 가지를 먹으려면 소고기 스테이크를 해먹을 때 구워서 같이 내는 방법이다. 아스파라거스, 마늘, 양파와 같이 서로 다른 식감과 맛을 지닌 재료를 구워 내면 먹는 즐거움이 있다.

123.jpg
▲ 소고기 스테이크를 내면서 아스파라거스, 마늘, 양파와 더불어 가지를 구워 곁들였다. 서로 다른 식감의 재료여서 조합이 나쁘지 않다. / 최환석 기자

가지를 간식으로 즐기려면 구운 다음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올려 녹이고 나서 취향에 맞는 소스를 곁들여 먹는 방법이나 튀겨 먹는 방법도 있다. 나물, 무침도 괜찮은 선택이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또 하나 주의할 점. 비닐에 포장된 가지를 대형 할인점에서 구입하고 나서 집에서 손질하려고 빼는 순간 손가락 끝이 따끔했다. 가지 꼭지에는 가시가 있는데, 혹여 몸에 깊게 박히면 불쾌감이 오래간다. 가지 꼭지에 가시가 많으면 씨가 많다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가지 꼭지도 심심찮게 쓰인다. 가지 꼭지를 그늘에서 말린 다음 감초와 함께 달여서 차로 마시면 편도선염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지 꼭지로 차를 내려 마시려면 우선 가지 꼭지를 불에 볶아 수분을 없애야 한다.

말린 가지 꼭지를 태운 다음 가루 내어 먹으면 치질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소금에 절인 가지 꼭지를 태워 가루로 만들어 치근막염 등 부위에 바르기도 한다. 태운 다음 가루를 낸 가지 껍질을 설탕에 개어 아픈 이 부위에 발라도 좋다고. 말린 가지 꼭지를 물에 끓인 다음 소금을 더해 양치하거나 가글하는 데 쓰기도 한다.

가지 꼭지를 달인 즙을 먹기도 하는데 맹장염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밖에 가지에 들어 있는 '루페올'이란 성분이 여드름 환자 피지 생성과 염증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전해진다.

감자

각자의 집에서 나는 냄새는 특유의 결이 있는데, 그 형태가 몹시 다르다. 특히 요리를 했을 때 나는 냄새가 그렇다. 어떤 재료를 쓰느냐, 조미료는 무엇을 쓰느냐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 음식이다. 거기에는 요리를 하는 사람의 개성이 묻어있다.

타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방문했을 때, 수저를 들고 가장 먼저 먹는 것이 김치다. 김치 맛에는 그 집의 개성이 묻어있어서다. 한국인 한정으로 상대방을 빨리 이해하고, 그 사람의 성향을 읽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김치라는 생각이다.

아쉽게도 요즘은 김장 김치를 내는 집이 별로 없다. 시판용 김치를 주로 내는데, 맛은 평준화했을지 몰라도 개성은 없어 심심할 따름이다. 물론 갈수록 지치고 바쁜 일상인 데다, 김장 재룟값도 심심찮게 드는 터라 김장을 하지 않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은 없다.

123.jpg
▲ 감자 사진을 찍으려고 엄마에게 감자를 들게 했다. 거친 감자 질감과 엄마의 손이 무척 닮았다. / 최환석 기자

어릴 때는 김치를 딱히 찾지 않았다. 더군다나 집에서 담은 김치 말고는 손을 대지 않았다. 김치 기호에서만큼은 입이 짧았다. 그래서 다른 집의 개성을 읽으려면 다른 음식에 집중해야 했다.

가끔 여러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함께 밥을 먹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꼭 감자 샐러드가 식탁에 올려졌다. 감자 샐러드는 비교적 쉽게 맛을 낼 수 있고, 여러 재료가 들어 있어 식단 구성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모로 김장보다는 손이 덜 간다.

감자 샐러드도 김치에 버금가는 개성 요리다. 공통으로 들어가는 것은 삶은 감자가 거의 유일하고, 나머지 곁들이는 재료는 집집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계란을 넣는 집이 있는가 하면, 과일을 꼭 넣는 집이 있다. 쓰이는 과일도 사과, 바나나 등 종류가 갖가지다. 계란과 과일은 일절 넣지 않는 집도 당연히 존재한다.

본래 감자 샐러드는 사워크림(생크림을 발효시켜 새콤한 맛이 나는 크림)이 바탕이 되는데, 보통 한국 가정에서는 마요네즈를 쓴다. 머스타드 소스를 함께 넣어 맛을 내는 집도 있다.

손재주 좋은 엄마를 만나 제철 재료를 쓴 훌륭한 요리를 매일 얻어먹는다. '계절의 맛'을 쓰면서 그 덕을 심심찮게 봤다. 가장 훌륭한 취재원이 바로 엄마다. 곁눈질로 보고 배우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를 따라갈 자신은 없다.

감자가 제철이라 요즘 집에서 곧잘 감자를 쓴 요리를 만난다. 거의 매일 먹는다고 보면 되겠다. 며칠 전에는 집에서 직접 감자탕을 해 먹었다. 물론 엄마 솜씨다. 푹 삶긴 돼지고기도 훌륭했지만, 포슬포슬한 감자가 일품이었다.

아침에는 식빵 두 장 사이에 감자 샐러드를 넣어 먹는다. 감자 샐러드를 듬뿍 넣어 먹으면 점심때까지 배가 든든하다. 식빵과 감자 샐러드의 조합은 다소 텁텁하긴 하지만 배를 채우는 데는 그만이다.

이제 엄마의 감자 샐러드 조리법을 밝힐 차례다. 먼저 감자를 잘 삶는다. 젓가락으로 찔러 익은 정도를 확인한다. 삶은 감자는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뜨거울 때 하는 것이 좋다. 감자를 으깨서 넣을 것이면 마찬가지로 뜨거울 때 하자. 반대로 마요네즈는 감자가 식었을 때 넣어야 한다.

569518_435269_1613.jpg
▲ 완성한 감자 샐러드. 삶은 감자를 으깬 다음 파프리카, 햄, 소금에 절인 오이와 양파를 한 데 섞었다. 마요네즈와 머스터드 소스도 함께다. /최환석 기자

부재료는 파프리카, 햄, 소금에 절인 오이와 양파가 들어간다. 당연히 입맛에 따라 부재료를 다양하게 써도 좋다. 대신 살짝 절인 채소는 물기를 꼭 빼고 넣어야 한다. 한 번 먹을 정도만 만들어 먹는 것이면 크게 상관없지만, 두고 먹을 예정이라면 꼭 물기를 빼야 한다. 나중에 물기가 흥건하게 묻어 나와 잘 만든 감자 샐러드를 망친다.

으깬 감자가 식으면 샐러드 볼에 채소와 함께 넣고 마요네즈를 뿌려 잘 섞는다. 감자 샐러드 간은 절인 채소와 마요네즈가 좌우하기에 맛을 보면서 적당한 양의 마요네즈를 넣으면 된다. 절인 채소가 짜다 싶으면 물에 헹구면 된다.

엄마는 감자 샐러드에 머스타드 소스를 넣었다. 적당히 매운맛을 내려는 까닭이다. 여기에 후추를 뿌려 향미를 더한다. 잘 섞여 완성된 감자 샐러드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냉장고에 2~3시간가량 묵히면 간이 적당히 배여 맛있어진다.

솔직히 감자는 그냥 삶아 먹어도 맛있다. 어떻게 먹든 속을 든든하게 채운다. 남미 안데스가 원산지인 감자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재배된다. 식민지화를 목표로 함대를 이끌고 돌아다니던 유럽인에게 감자를 내어준 것은 남아메리카 원주민이다. 배가 고파 허덕이는 이들에게 감자는 더할 나위 없는 식량이었겠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이 건넨 선물은 유럽 식량문제를 해결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 감자가 큰 역할을 했다.

뱀발로, 사진을 찍겠다고 엄마에게 감자를 들게 했는데 다 찍고 나서 결과물을 보니 거친 감자의 질감과 엄마의 손이 무척이나 닮았더라. 아들 배를 불리게 하겠다는 엄마의 마음과 감자의 포슬포슬한 속살도 꽤나 닮은 듯하다.

전통주

비가 오면 판에 박은 듯 따라붙는 것이 '술'이지 않을까. 비 오는 날도 술을 마시려는 술꾼의 오랜 변명일지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맞춰 기울이는 술잔은 고유한 정취가 있다. 술에 정해진 계절이 있겠느냐마는, 여름 장마철을 빠트리면 섭섭하다.

잃어버린 100년

한국에서 으레 비가 올 때 찾는 술은 '막걸리'다. '탁주'라고도 불리는 이 술은 농민과 노동자가 즐겨 찾는 노동주였다.

막걸리 주재료는 멥쌀인데, 멥쌀이 알코올로 변하려면 다른 성분이 꼭 필요하다. 바로 '누룩'이다. 술과 관련한 위대한 발견 하나를 꼽으라면 누룩을 빼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탁주가 서민의 술이라면, '약주'는 양반의 술이었다. 양반가는 제사나 손님을 맞을 때 쓸 술을 직접 만들었다. 탁주보다 투명에 가까운 술로, 약재를 넣어 빚기도 하여 약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탁주와 약주는 19세기 말 조선에서 일본식 청주를 생산하던 일본인도 높게 평가한 조선주다. 약주는 19세기 말 이후 음식점이나 양조장에서도 만들어 판매했고, 탁주도 식민지 초기까지 술집이나 가정에서 신고만 하면 직접 제조할 수 있었다.

570088_435697_3722.jpg
▲ 단양주(뒤)와 이양주. 이름 그대로 한 번 빚은 술과 두 번 빚은 술을 뜻한다. 35일 발효한 이양주는 복숭아꽃을 첨가하여 향을 달리했다. /최환석 기자

그런 까닭에다, 여기 언급하지 않은 청주·증류식 소주·혼성주 등을 포함하면 한국의 전통주는 다양성만큼은 으뜸이었다. 헌데 지금 한국의 술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전통주가 아닌 혼합식 소주다. 그 까닭에는 한국 전통주의 '잃어버린 100년'이 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9년 주세법이 발효하면서 전통주 통제가 시작됐다. 1916년 조선총독부에서 기존 주세법을 개정한 주세령을 발효했는데, 더욱 엄격한 통제가 이뤄졌다. 제조면허가 있어야만 술을 만들 수 있도록 하면서 한국 전통주는 서서히 다양성을 잃게 됐다.

여기에 더해 약주는 일본 청주가 한반도에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옛 마산 등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곳에는 어김없이 일본인이 소유한 양조장이 들어섰다. 마산에서 생산한 청주는 따로 '마산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서 일본 청주를 '정종'이라 잘못 부르게 된 까닭도, 일본 청주 회사의 상표가 인기를 끌면서다.

주세령으로 술을 만들려면 면허가 있어야 했기에 제조에 비용이 많이 드는 약주는 서서히 변질했다. 재료비를 아끼려고 찹쌀·멥쌀이 아닌 다른 것을 섞기 시작한 것. 결국 '약주'라는 이름이 무색한 상황이 연출됐다.

탁주는 주세령에도 생산량이 계속 늘었다. 생산하는 곳도 많고 양도 많아 주조법을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았다. 탁주 위기는 약주와 달리 해방 이후에 찾아왔다.

1946년 미군정청은 막걸리 주조 금지령을 내렸다. 한국 식량 사정을 고려한 제재였으나 식민지 시대에도 없던 주조 금지령에 반발이 컸고, 밀주도 성행했다. 이후에도 1963년 탁주 제조 원료 등에 쌀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와 1966년 멥쌀 사용 전면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탁주는 본래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이때 100% 밀 막걸리가 생산됐다.

1977년 재무부 고시로 이전 고시가 폐지되면서 쌀 막걸리가 부활했으나 밀 막걸리에 길든 입맛을 되찾기는 어려웠다. 서민들은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데 값싸고 독한 희석식 소주를 애용한 지 오래였다.

전통주 부활의 신호탄

최근 들어 한국 전통주에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막걸리는 2000년대 후반 한 차례 대성황을 이뤘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민속주라는 이름의 약주를 표방한 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업성이 중심인 이들 술을 온전히 한국 전통주라 부르기엔 다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전통 문헌을 바탕으로 전통주 복원이 민간에서 이뤄지고 있다. 일본식 누룩을 쓰지 않고, 한국 전통 방식의 누룩이나 전통을 개량한 누룩을 쓰면서 전통주 복원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전통주 이야기'라는 공간이 마련됐다. 이곳을 운영하는 허승호 씨는 전통주 연구가 박록담 선생이 운영하는 한국전통주연구소 전통주 특별 지도반 과정을 마쳤다.

이달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할 이 공간에서 허 씨는 직접 전통주를 빚는다. 널찍한 공간 한쪽 각기 온도가 다른 공간 두 곳에는 허 씨가 직접 빚은 전통주가 익고 있었다. 이 공간은 전통주를 빚는 개인에게 공유할 생각이기도 하다.

570088_435696_3722.jpg
▲ '전통주 이야기' 발효실 모습. 이곳에서는 발효실 공간을 두 개로 나누어 온도를 달리한다. 허승호 씨가 이불로 덮었던 술독을 보여주고 있다. /최환석 기자

술맛을 보려면 예약을 하고 찾아야 한다. 취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배제하고, 전통주의 맛과 향을 즐길 사람만을 받길 원하는 까닭이다. 7월 말께부터는 전통주 관련 교육도 시작할 계획이다. 단순히 전통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도다.

오롯이 멥쌀, 찹쌀, 누룩, 물로만 술을 빚는 허 씨는 전통주를 표방하는 시중의 일부 술을 "라면스프 넣은 술"이라고 표현했다. 시판 막걸리는 대체로 인공 감미료인 '아스파탐'을 쓴다. 상품성을 유지하려는 선택이지만, 반대로 제대로 맛을 내지 않고도 소비자의 거부감을 없애는 속임수로 쓰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몇몇 잘못된 선택은 소비자의 입맛을 속이고, 결국 한국 전통주의 부활을 막는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허 씨는 "청주 개념인 동동주도 실제 익으면 쌀이 가라앉는다"며 "막걸리에 쌀을 띄운 것을 동동주라고 속여서 파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전통주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어렵지만, 100년의 잠을 깨우는 과정입니다. 전통주는 단순한 알코올 음료가 아니라 고유의 문화를 내포한 까닭에 복원 과정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전통주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2%가량의 시장 점유율을 봤을 때는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허 씨는 "진정한 한국 전통주가 늘어나면 시장 점유율도 5%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그런 과정을 거치면 분명히 한국 전통주를 대표하는 명주가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갈치

어릴 때 들은 칭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을 꼽으라면 '생선 살 잘 바른다'는 말이다. 어른들 눈에는 작고 통통한 손으로 생선 살을 발라 먹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칭찬을 들은 까닭인지, 밥상에 생선이 있으면 항상 긴장했다. 잘 발라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서다. 가끔 제대로 바르지 못해 뼈가 목에 걸리면 불편함은 둘째 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생선 살을 잘 바르면 야릇한 쾌감이 있다. 가끔 나 자신이 생선 살 잘 바르는 장인이 된 듯한 기분도 든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이런 상상을 하고는 한다. 이젠 생선 살 잘 바른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약간 서글프다.

123.jpg
▲ 창원 마산수협남성공판장 옆 시장에는 제철을 맞은 갈치가 쉽게 보인다. / 최환석 기자

갈치는 요령만 익히면 생각보다 쉽게 살을 바를 수 있는 생선이다. 잔가시가 많은 고등어나 전어에 비하면 어렵지 않다. 지금도 어릴 때 익힌 '매뉴얼'에 따라 갈치를 발라 먹는다.

젓가락으로 몸통 양옆을 제거하고 손으로 잡아 먹거나, 숟가락으로 몸통을 훑어 살을 발라 밥과 함께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요즘은 제거한 몸통 양옆 살을 뼈와 함께 씹어 먹기도 한다. 적당히 삭은 갈치는 뼈째 먹기 좋을 정도로 물러진다. 얇게 토막 낸 갈치를 기름에 튀기듯 구우면 뼈째 먹을 정도로 익는다.

소금을 뿌려 노릇하게 잘 구운 갈치는 밥도둑이다. 어릴 때는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소금구이로 갈치를 즐겼다. 성인이 되면서 갈치조림 맛을 알게 됐다.

냄비에 호박을 깔고 토막 낸 갈치를 넣은 다음 진간장, 고춧가루 등으로 간을 하고 대파, 청양고추를 넣고 졸이면 훌륭한 갈치 요리가 된다.

싱싱한 갈치는 회로 먹거나 국을 해 먹기도 한다지만 다루는 식당을 찾기가 다소 어렵다. 경남에서는 남해 미조항에 갈치회를 다루는 식당이 포진했다.

농어목 갈치과 바다물고기인 갈치는 심해에 산다. 한반도 근처에서는 2~3월께 제주도 서쪽 바다에 머문다. 4월께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해 여름에 남해·서해 연안에서 알을 낳는다. 7월부터 11월까지 많이 잡힌다. 이 시기에 가끔 낚시를 하면 갈치가 잡히기도 한다.

570627_436147_1557.jpg
▲ 호박을 깔고 토막 낸 갈치를 넣어 만든 갈치조림. /최환석 기자

번쩍이는 은빛 몸통, 길쭉한 모양새는 갈치를 상징한다. 기다란 칼처럼 생긴 모습 덕분에 이름이 갈치다. '칼 도(刀)'를 써서 도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서양인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휜 검인 '커틀러스'에서 이름을 따 '커틀러스 피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칼치'라고 억세게 발음하기도 하는데, 갈치라고 부를 때보다 칼치라고 부르면 더 맛깔스럽게 느껴진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그렇게 발음을 했었던 까닭에 정겹게 느껴지는 듯하다.

갈치를 사려고 창원 마산수협남성공판장 옆 시장에 들렀더니 죄다 갈치다. 장마 기간이라 다소 어두운 데도 유독 갈치만 도드라진다. 은빛 치장이 구미를 당기고, 손님을 부른다.

가까이서 보면 등마루를 덮은 등지느러미는 연한 풀색을 띤다. 배와 꼬리에 지느러미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생선에 비해 머리는 작지만 눈과 입이 큼직하다. 날카로운 이빨은 고소한 맛과는 달리 강한 인상을 준다.

'은갈치'가 '금갈치'인 요즘이지만 1만 원짜리 한두 장이면 넉넉하게 산다. 손질까지 해주니 집에서 조리만 하면 된다. 절반은 구이로, 절반은 조림으로 먹겠다고 하면 상인들이 알아서 맞춤 손질을 해준다.

몸통 은빛이 밝으면 신선한 갈치다. 갈치의 은분은 화장품 재료로도 쓰는 구아닌이다. 진주에 광택을 내거나 립스틱 펄 재료로 쓴다.

시장에서 산 갈치는 이틀에 나눠 흡족하게 먹었다. 첫날은 약하게 소금 간을 한 갈치를 구워 달래장을 얹어 먹었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달래장으로 향미를 더욱 강조했다.

이튿날은 호박을 반달 썰기(재료를 반으로 갈라 통째로 자르는 방법)하여 냄비 아래에 깔고 갈치를 넣어 조림을 해 먹었다. 밥 한 공기는 뚝딱. 바닥에 남은 장은 밥에 쓱쓱 비벼 먹으니 남길 것이 없었다.

속담에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는 말이 있다. 몸통이 길어서 제 꼬리를 스스로 물 수 있다는 뜻일까? 갈치는 육식성 어류다. 산란기에 영양 보충을 하려는 본능에 더욱 충실해지는데, 동족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나 가족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는 모습을 갈치에 빗대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고 한단다. 이밖에 날씬한 배는 '갈치 배', 좁은 데서 여럿이 몸을 뉘어 불편하게 자는 잠은 '갈치잠'이나 '칼잠'이라 한다.

가까운 일본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선 갈치를 잘 먹지 않는다고. 우리네 일상과 연관이 깊은 표현에 갈치가 등장하는 까닭이겠다.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환석 기자

    • 최환석 기자
  • 문화부. 공연, 문화정책 담당. 레져도 함께. 제보/피드백 010-8994-4329.